[자빙] 리퀘 1 연성 2015. 3. 4. 18:18
창가에 드리워진 블라인드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부드러운 햇살. 보송보송한 감촉의 이불. 이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나른하게만 느껴지는 주말의 아침이었다. 가능하다면 좀 더 잠을 청하고 싶었지만, 왠지 모르게 허전한 느낌을 받은 무라사키바라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눈을 떠보니 품 안이 텅 비어 있었다. 분명히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품 안엔 같이 잠을 청하던 이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무로칭?

입을 열어 상대의 이름을 불렀다. 아니, 부르려고 했다. 하지만 잠에서 막 깨어난 탓인지 몰라도, 입술 사이에서는 목소리가 아닌 살짝 거친 바람소리 같은 게 흘러나올 뿐이었다. 그것이 불만이라는 듯이, 무라사키바라는 미간을 살짝 좁혔다. 그리곤 다소 거칠게 베개에 고개를 파묻곤 부비적거렸다. 그렇게 아무 의미도 없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을 즈음, 침실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점점 가까워지는 인기척과 함께, 나지막한 허밍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이서 들리기 시작하던 허밍은 이내 곧 잦아들었다. 그 대신 침대 한 쪽이 꺼지는 것 같은 느낌이 전해졌다. 침대 가장자리에 누군가가 걸터앉은 것처럼.

“아츠시, 일어났어?”

평소와 다름없는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부드러운 손길이 머리 위에 살짝 안착하는 것을 느꼈다. 무라사키바라는 베개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슬쩍 돌려, 그 손길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샤워를 하고 나온 것인지 촉촉하게 젖어있는 머리카락이 먼저 시야에 들어왔다. 옅은 샤워 코롱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서서히 깨어나는 감각 하나 하나로 상대를 인지한 다음에야 비로소 무라사키바라는 다시 입을 열었다.

“...무로칭.”
“좋은 아침이야, 아츠시.”

사귀기 전부터 불러왔던 별칭으로 무라사키바라가 그를 부르자, 히무로는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좋은 아침이라고 이야기를 하며, 습관처럼 고개를 숙여 무라사키바라의 이마 위에 가볍게 키스를 남겼다. 살며시 눈을 감았다 뜨며 그 키스를 얌전히 받아들이던 무라사키바라가 다시금 운을 뗐다.

“무로칭, 어디 가?”
“아, 응. 저번에 이야기 안 했던가?”

타이가 만나러 갈거야, 하고 히무로는 말을 끝맺었다. 그리고 잠시 무라사키바라를 내려다보다가 시선을 거두어 들였다. 마저 밖에 나갈 준비를 마쳐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처럼 보였다. 무라사키바라는 그런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가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손을 뻗어서 그의 손목을 가볍게 잡은 뒤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불시에 끌어당겨진 탓에 히무로의 몸이 기우뚱했다. 누운 것도, 앉은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를 취한 채로 그는 슬쩍 당혹감을 표했다.

“아츠시?”

서로의 눈에 서로의 모습이 비칠 정도로 얼굴이 가까워졌다. 하지만 그 이상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무라사키바라는 히무로의 손목을 잡아당긴 이유를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저 빤히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침묵이 다소 불편해질 즈음, 히무로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여간, 아츠시도 참.”

갑작스럽게 이런 행동을 하는 건 좀 자제해줬으면 좋겠어, 하고 히무로가 가볍게 타박을 하듯이 말했다. 그리고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붙잡힌 손목을 슬쩍 비틀어 빼내려고 했다. 하지만 무라사키바라는 놓아줄 생각이 없다는 듯이, 좀 더 강하게 손목을 잡고 있었다.

무엇이 그의 심사를 뒤틀리게 한 것일까. 히무로는 속으로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보아도 딱히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었다. 물론 막 깨어났을 때의 무라사키바라는 대개 저기압이긴 했지만, 이렇게 묵묵부답으로 자신에게 투정을 부린 적은 드문 편에 속했다. 일단은 달래는 편이 좋을까. 히무로는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그에게 붙잡히지 않은 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뭐 때문에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만 놓아주겠어?”

슬슬 나갈 준비를 하지 않으면, 하고 덧붙였다. 무라사키바라는 그 마지막 말에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타츠야. 가지마.”

연신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던 히무로의 손길이 우뚝 멈추었다. 지금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걸까. 히무로는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한지 모른 채, 입술만을 달싹이고 있었다. 꽤 오랫동안 사귀어왔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이렇게 이름을 불러준 것은 처음이었다. 언제나 ‘무로칭’이라는 그만의 독특한 어미를 붙인 별칭으로 히무로를 불러왔기 때문에. 그 때문에 지금 불린 실제 이름이 더할 나위 없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낯선 감각은 곧 거센 심장박동을 불러일으켰다. 쿵쿵, 하고 가슴 속이 요란스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어... 그러니까...”
“가지마, 타츠야. 아니면 나랑 같이 가.”

히무로가 그 답지 않게 당황하는 기색을 겉으로 드러내자, 무라사키바라는 슬쩍 입 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그리고 쐐기를 박는 것처럼 다시 한 번 그를 타츠야, 라고 부르면서 특유의 칭얼대는 듯한 어조로 말을 덧붙였다.

“나도 금방 씻고 나올 테니까 먼저 나가지 말구.”

확답을 얻어내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던 무라사키바라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침대에서 내려와 하품을 크게 한 번 하더니, 곧 욕실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히무로는 그렇게 침실에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 아직도 거세게 뛰는 심장은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복잡한 심경이 담긴 영어 욕설을 가볍게 내뱉곤, 히무로는 그대로 침대 위에 엎어졌다. 그 와중에도 방심했다는 말과, 심장에 좋지 않다는 말을 반복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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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에서 받은 리퀘.
느닷없이 이름으로 불려서 부끄러워 하는 히무로... 라는 시츄에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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