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 리퀘2 연성 2015. 3. 15. 01:02

청화 테이코 흑화미네 + 타교생 카가미


승리를 하고 난 후에야 맛볼 수 있던 극상의 기쁨. 그것을 느끼지 못한 게 벌써 얼마나 되었는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승리를 거두었다. 그것이 원래 자신의 양 손 안에 있었던 것처럼. 마치 날 때부터 한 몸이었던 것 마냥. 그래서인지 승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이 점점 떨어져갔다. 분명히 이기고 나서 미소를 지었던 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덤덤하기 짝이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 번도 미소를 지었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과거의 기억이 왜곡되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도 지는 것보다는 낫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과 맞붙는 이들의 얼굴이 패색으로 얼룩지고, 그 얼굴에 포기라는 단어가 떠올랐을 때 깨달았다. 이건 아니다, 라고. 자신의 능력과는 별개로, 타인이 포기해버린 승부를 반쯤 어부지리로 쟁취하는 것은 더럽기 짝이 없는 기분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원하지 않은 선물을 억지로 떠안겨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신을 완벽하게 막아 세울 수는 없더라도, 자신을 묶어두는 것이 비록 버겁다 하더라도, 끈질기게 맞서 싸워주길 바랐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투쟁심이라는 것을, 호승심이라는 것을 느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자신의 바람을 백지로 되돌려버렸다. 시합포기라는 형태로 말이다.


“...”


숨을 길게 내쉬었다.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간 더운 숨결이, 하얀 김이 되어 공기 중에 흩어졌다. 숨을 한 번 들이켰다. 폐부를 얼려버릴 것 같은 시린 공기가, 몸 안을 가득 메웠다. 몸도 마음도 얼어가기 시작했다.


“지루해.”


휘적휘적 움직이고 있는 다리에 누군가가 납을 매달아 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걸을 때마다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손목 또한 무겁기 짝이 없었다.


“따분해.”


머리 안쪽에서 쾅쾅 울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분명 직시하고 있을 터인 시야가 빙그르르 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 싫다. 정말.”


생각하는 것도, 몸을 움직이는 것도 싫어져 버렸다. 지독하리만치 깊은 권태로움을 뱉어내면서, 발걸음을 강둑 쪽으로 옮겨버렸다. 강둑 가장자리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살얼음이 낀 강이 눈에 들어왔다. 겨울 강은 여느 때보다 고독하고 쓸쓸해 보이는구나, 하고 무심코 생각해버렸다.


얼핏 보면 단단해 보이는 얼어버린 강. 하지만 발을 잘못 디딘다면, 얄팍하게 얼어 있는 얼음이 파스스 부서져 내릴 터였다. 그리고 부서져 버린 얼음 틈으로 발이 빠져,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강 밑바닥으로 잠기게 될 것이다. 차가운 물에 먼저 닿아버린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위로, 위로 냉기가 침투하면서 온 몸이 굳어갈 것이다.


그리고 최후엔 꽁꽁 얼어버린 채로, 어두운 강 밑바닥에서 몸을 뉘인 채 잠들어 버리겠지. 아무도 구해줄 수 없는 곳에서. 영원히.


“핫, 나도 미쳐가나 보네.”


기분이 더욱 가라앉는 것 같아서, 괜히 짧은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만약 그때, 근처에 앉아 있던 누군가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그대로 집에 돌아갔을 것이었다. 하지만 한 사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얼굴에, 자신이 이따금 짓곤 했던 표정이 떠올라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그에게 말을 건네게 되었다.


“야. 정말 좋아했던 게, 갑자기 지루하고 따분해지면 어떨 것 같냐?”


자신의 물음에, 강을 응시하고 있던 그의 시선이 움직였다. 차갑게 식은 듯 했지만, 아주 희미하게 열기를 품고 있는 것 같은 눈동자가 이쪽을 주시했다.


“그 지루함이랑 따분함이 도를 지나칠 정도라 만사가 귀찮아질 정도면 어떨 것 같냐?”


이어 질문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얼굴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하. 세상 참 편하게 사는구만.”

“그게 뭐가 잘못 됐는데.”


자신의 말이 거슬렸는지, 그가 다소 퉁명스러운 어조로 대꾸했다. 그리고 이어서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건 조금 슬플 것 같네.”

“...뭐?”

“그렇게 좋아했는데, 그 감정이 변해버리다니. 분명 뭔가 본인에게 있어서 큰 변화가 있었던 거겠지 싶어서.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 말이지.”


잘은 모르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어, 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손으로 툭툭 본인의 옷을 털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문득 깨달았다. 앉아 있을 때는 몰랐으나,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자신과 비슷한 신장의 소유자라는 것을. 그것에 아주 조금 호기심이 동했다. 그래서 그가 자리를 뜨기 전에 서둘러 말을 건넸다.


“야, 너 어디 다니냐?”

“... 교복을 보아하니 너네 학교는 아니겠네.”


그는 힐끔, 자신의 교복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어딘가 애매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리고 자신이 무언가를 더 물어보기도 전에, 그는 발걸음을 돌려 어딘가로 떠나가 버렸다.


*


그리고 그를 다시 만난 것은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고등학교 1학년 여름. 인터하이 경기장에서였다.



'연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립] 그의 취향  (0) 2015.04.11
[적먹] 돌아오는 계절  (0) 2015.03.26
[청화] 센티넬버스 리퀘  (0) 2015.03.13
[자빙] 리퀘 2 (오메가버스)  (0) 2015.03.08
[자빙] 리퀘 1  (0) 2015.03.04

청화 : 센티넬버스 AU

키워드 : 두 손을 등 뒤로, 얼음 호수, 빠져 나갈 수 없는 미로


[싫어!] [안 가!] [못 가!] [∎∎∎!!]


거칠지만 아직은 앳된 티가 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것은 환청에 가까운 것으로, 자신만이 듣는 목소리라는 것을 카가미는 알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예전부터 들렸던 것으로, 불현듯 찾아와 머릿속을 잠식해가곤 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늘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통증을 수반했다. 그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라, 카가미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서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카가미 씨, 괜찮습니까?”


운전석에 앉아 운전을 하고 있던 사람이, 백미러 너머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카가미는 두통으로 인해 흐릿해지는 눈의 초점을 다 잡으면서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안 좋은 꿈이라도 꾼 모양이군요.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꿈이라고 해야 할지... 예전 기억에 가까운 거였습니다.”


이런 자신의 말에, 운전을 하고 있던 사람이 무심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카가미 씨는 기억상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하고. 그러나 그 본인도 말실수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황급히 입을 다물곤 시선을 돌려 정면을 주시했다. 카가미는 그 모습을 백미러에 반사된 이미지를 통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그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자신은 불의의 사고로 인해 과거의 기억 대부분을 잃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의 단절, 그리고 남겨진 추억의 소멸을 뜻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기억해내지 못할 정도였다. 그렇게 아무 것도 떠올리지 못한 채 입원해 있던 중, 한 단체에 소속된 사람이 접촉해왔다. 그리고 짤막하게 대화를 나눈 뒤, 이내 그 단체 소속 병원으로 자신을 호송해갔다.


타의로 이동하게 된 병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다. 센티넬. 가이드. 이전에는 없던 케이스. 개화된 힘. 아마 그 이야기들은 자신이 멀쩡한 상태였다고 해도 이해하기 힘들었을 거라고,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카가미는 무심코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의 자신은 의지할 곳이 달리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이 될지도 모르는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들은 자신의 재활 훈련을 도와줄 뿐만 아니라 과거 기억을 일깨우는 것에도 신경을 써주었다.

그것이 가이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


차가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서, 가로등들이 잔상을 남기며 뒤로 흘러 지나갔다. 카가미는 그것을 응시하고 있다가 이내 눈을 다시 감아버렸다.


이렇게 눈을 감고 있으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과거를 일깨울 때 가장 먼저 되찾은 기억이었다. 그리고 자신만 들을 수 있는 그 목소리와도 관련된 것이었다.


이미 과거와 한 번 단절되었기 때문에, 그 기억 속의 자신이 카가미 자신이라는 강한 확신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 때의 감정만큼은 자신의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에.


자신은 어린 소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어린 소년은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 두 셋에게 붙잡혀 어디론가 끌려가기 시작했다. 소년은 거칠게 저항했다. 그리고 이쪽을 향해, 간신히 한 팔을 뻗었다. 손을 잡아달라고, 구해달라고 외치는 듯한 얼굴로. 하지만 자신은 그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그에게 양 손을 뻗을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두 손을 등 뒤로 숨길 뿐이었다. 그리고 찾아온 것은 이별, 발치에 떨어지는 것은 눈물이었다.


떨어지는 눈물이 발치에 고이기 시작했다. 고인 눈물은 이내 호수가 되었고, 호수는 시린 이별로 인해 꽁꽁 얼어붙었다. 그 얼음 호수 위에서 ‘카가미’는 발이 묶인 것처럼 멈추어 서 있었다. 흐려져만 가는 소년의 자취를 더듬으면서.


[미안해.]


과거의 왜곡된 기억을 따라 읊조리듯이, 카가미의 입술이 달싹였다. 그리고 이내 다시 눈꺼풀을 들어 올려 현실로 돌아왔다.


“카가미 씨, 곧 도착하니까 내릴 준비 하십시오.”

“...네.”


그 말을 주고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탄 차는 한 저택의 출입구 안으로 미끄러지듯이 진입했다. 사회적 고위층이 살고 있을 거라고 해도 믿을 법한 번지르르한 저택을, 차 안에서 스쳐지나가듯 감상했다. 하지만 번듯한 외견과는 달리...


“공기는 험악하군.”

“역시 느껴지시는 겁니까? 확실히 가이드는 다른가봅니다.”


준비된 공간에 차를 주차하면서 그가 이야기를 했다. 이곳에는 좀처럼 통제하기 힘든 센티넬이 살고 있다고. 통제하기 힘든 만큼, 능력 하나는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센티넬이. 그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통상 능력의 가이드 네 다섯 명이 붙어야 하지만, 카가미 씨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거란 사족 또한 덧붙였다.


자신의 능력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그의 말에, 카가미는 작게 조소를 흘렸다. 가이드로서의 능력은 둘째 치고 자신은 각성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 사람에게 통제 불능의 센티넬을 붙이려고 하다니. 그 센티넬이 얼마나 골칫덩이였으면 이렇게 떠넘기려 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내 생각했다. 이용당해도 별 수 없지, 하고. 어찌 되었든 재활 치료를 도와주고, 기억을 되찾아주려 노력한 보답 정도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은 채,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마중 겸 저택 안내역을 맡은 사람이 이쪽으로 다가오자, 그를 따라서 저택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점점 공기가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공기를 통해서 누군가의 감정을 감지했다. 끊임없이 외치고 있었다. 누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그 처절함만큼은, 자신의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소년의 목소리와도 같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곧 사라져 버렸다. 안내역을 맡은 사람이 어느 문 앞에 서서, 그 문을 열어젖힌 순간에.


“....!!”


방 안에 있던 한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소파 위에 나른하게 드러누워 있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하지만 무언가에 깜짝 놀란 것처럼, 상체는 반쯤 일으켜 세우고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카가미는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저 남자가 센티넬이구나, 하고. 그리고 처절하게 울부짖는 것 같은 감정을 발산하고 있었던 사람이 저 남자구나, 하고. 그리고 또한 시선이 마주친 순간 깨달아 버리고 말았다. 기억 상실이라는 빠져 나갈 수 없는 미로에 갇혀버린 자신에게 있어서, 저 남자는 미궁을 빠져나갈 하나의 단서이자 해결책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사실을. 왠지 모르게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노력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앞으로 네 전속 가이드가 될 카가미다. ...잘 부탁한다.”


>

센티넬 아오미네 + 가이드 카가미. 

카가미는 사고 후 기억상실, 그리고 후에 가이드 능력 각성.

[∎∎∎!!] 는 아오미네가 카가미를 '타이가' 라고 부른다는 그런.. 거... ㅇㅅ<....


'연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먹] 돌아오는 계절  (0) 2015.03.26
[청화] 리퀘2  (0) 2015.03.15
[자빙] 리퀘 2 (오메가버스)  (0) 2015.03.08
[자빙] 리퀘 1  (0) 2015.03.04
[황립] 무제. 키워드 : 질투하고 있습니까?  (0) 2015.02.28

커피포트 한 가득 내려두었던 커피를 머그컵에 옮겨 담았다. 넘치지 않을 정도로만 넉넉히 잔을 채우고, 조심스럽게 머그컵을 들어 올려 미리 창가에 비치해두었던 간이 의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엌과 거실을 가로질러 의자가 있는 곳에 도달하였을 때, 집 안쪽으로 도드라져 있는 창문틀 위에 잔을 잠시 내려놓았다. 그리곤 간의 의자에 등을 기대고 편히 앉았다.


창문틀 위에 내려놓았던 머그컵을 다시 집기 위해 잠시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안과 밖의 기온 차로 인해 희끄무레하게 서리가 내려앉은 창문 너머로 일루미네이션이 어른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나 흘러버린 건가,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머그컵을 집어 올리곤 입가에 가까이 댔다.


이곳에 겨울이라는 계절이 찾아온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집집마다 집 앞 마당을 작고 아기자기한 전구들로 귀엽게, 때로는 화려하다 싶을 정도로 꾸미기 시작하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다가올 크리스마스와 새롭게 시작될 한 해를 맞이하기 위해서.


이전이라면 자신도 분위기를 타서 집 앞 정원을 전구로 잔뜩 장식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한껏 부풀어가는 기대감과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하였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랐다. 자신의 집을 방문해 분위기를 살려줄 알렉스도 이 지역을 잠시 떠나있는 상태였고, 어린 시절처럼 자신을 찾아와 살갑게 말을 건네줄 의형제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그 또한 이 나라에 없었다.


그를 떠올린 순간 가슴 한 구석이 지끈거려오는 것 같아서, 손에 들려있던 머그컵을 다시 창틀 쪽에 내려놓고는 한숨을 잠깐 내쉬었다. 잠시 그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뿐이었는데, 그와 함께한 기억이 잠시 스치고 지나갔을 뿐이었는데, 일순 숨이 멈출 것만 같았다.


“중증이네.”


한숨이 뒤섞인 목소리로 나지막이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살짝 눈을 내리감았다.


*


고등학교 일학년 때 그를 경기장 내에서 처음 만났을 땐, 주체할 수 없는 투쟁심으로 가득한 상태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 격돌하게 되었을 땐 그의 강함을 인정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언젠가 일대일로 맞붙어서 이기고 싶은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몇 번의 접전과 만남이 되풀이 되었을 때, 어느 샌가 자신은 그의 빛에 이끌리듯 그라는 존재 자체에 이끌리고 있었고, 그를 향한 자신의 감정은 호승심을 뛰어넘어 일종의 연애 감정으로 변해 있었다.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게 된 자신을 스스로 인지하게 되었을 땐 이미 감정을 추스르기엔 너무 늦어버린 상태였다. 이제 손 쓸 수도 없는 지경까지 오게 된 자신에게 구역질이 날 것 같으면서도, 혹여 이 마음을 그 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들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초조함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자신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 한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이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그를 찾고 있어도, 그들은 그저 이전과 마찬가지로 ‘농구 시합에서 1대1로 맞붙어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과 더불어 다행인 점이 있었다면, 그와의 만남에 집착하는 것이 자신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그 또한 집요할 정도로 자신과의 1대1 농구 시합에 몰두하고 있었다. 자신이 그를 찾아가는 횟수를 의식적으로 줄이면, 으레 당연하다는 듯이 그가 자신에게 연락을 해왔다. 그러한 점에 안도를 하면서도, 역시 그에게 자신은 그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수 있는 경합을 벌이는, 그저 단순한 라이벌일 뿐인 건가 싶어서 씁쓸해지기도 했다.


자신의 곁을 지키던 그림자가 언젠가 이렇게 한 번 물었던 적이 있었다. ‘카가미 군은 지금 이 순간이 즐거운가요?’ 하고. 농구에만 몰두하고, 이기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던 이전의 자신이었더라면 분명 순간순간이 즐거워서 참을 수 없다고 대답을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질문을 들었을 당시엔 농구 외의 다른 존재에 시선을 빼앗겼던 터라 그렇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이 상황을 무마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옅은, 어딘가 공허한 미소를 지어버렸던 것 같았다.


원래는 좀처럼 생각을 읽어낼 수 없는, 그림자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일순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이 묻어나는 표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것을 보고도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이냐고 되물을 수도 없을 정도로, 자신은 이미 마음의 균형을 조금씩, 조금씩 잃어가고 있었다.


“아, 춥다.”

“..... 겨울이니까.”

“그건 나도 알거든?”


윈터컵 이후 그와의 재회는 쿠로코의 권유로 이루어졌다. 윈터컵 기간 전부터, 계절이 바뀌어 겨울에 접어들고 그걸 증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간간히 눈이 내리면서 지면이 어는 바람에 길거리 농구를 할 수 없게 되어버려, 그와 밖에서 만나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던 와중 쿠로코가 윈터컵도 끝났으니 셋이서 한 번 같이 모여서 필요한 농구 물품을 구매하러 가자고 흘러가는 듯한 어조로 권유를 했던 것이었다.


“셋이 모여서 물건 사러가자 그러더니 권유를 한 사람은 안 나오고 말이지.”

“쿠로코는 갑작스럽게 할머님의 부탁을 받아서 어쩔 수 없는 상태였잖아. 정확히 말하자면 못 나온 거지.”

“나도 테츠 문자 받아서 알거든? 일일이 토 달지 마.”

“그런데 왜 불평하고 난리야?”


그런데 왜 불평하고 난리냐는 자신의 물음에, 그는 잠시 입을 꾹 다물며 침묵하는가 싶더니 패딩 양쪽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는 휘적휘적 다리를 움직이며 먼저 앞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휘적휘적 움직이는 그의 움직임에, 발치에 소복하게 쌓여있던 눈이 채여서 가루가 되어 가볍게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고 있다가 그가 먼저 앞으로 나아가버리니, 자신도 따라 보폭을 크게 해 그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 잖아.”

“응? 제대로 안 들렸어, 아오미네.”

“쇼핑도 제대로 못하게 됐으면 농구라도 해야 하는데, 날씨가 이래선 아무 것도 못 하잖아. 길도 이 모양이니 농구장 바닥도 글러먹었을 테고.”

“뭐야. 욕구불만이냐?”

“하?”


욕구불만이냐는 자신의 말에,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처럼 반응하는 그의 대꾸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별 다른 의미를 담은 웃음은 아니었다. 단지, 그는 언제까지고 이렇게 ‘농구’만을 목표로, 피가 끓어오를 것만 같은 시합을 갈구하고 살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웃음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자신의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안 그래도 험악한 얼굴을 조금 더 구기며 이쪽을 응시했다.


“비웃는 거냐, 너.”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닌데.”


그런 건 아니라는 말에 더 이상 대꾸는 못하고 그저 투덜거리면서 그는 다시 앞서 걷기 시작했다. 조금은 불량해보이기도 하는 그의 뒷모습을 잠시 서서 바라보고 있다가, 그가 혼자 가버릴까 싶어 발걸음을 재촉하며 다시 그의 곁에 나란히 서서 걸었다. 그리곤 고개를 살짝 돌려 그의 옆얼굴을 응시하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오미네.”

“왜.”

“진학 건.... 말인데.”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가 싶었더니, 하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을 그가 잠시 지었다. 그리곤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툭툭 내뱉듯이 대답했다.


“사츠키도 요즘 그걸로 시끄러운데 너까지 그러냐.”

“뭐, 우리도 이번 겨울만 지나면 졸업이니까.”

“솔직히 난 바로 실업팀으로 가도 상관은 없을 거 같지만, 주변에서 시끄러우니까 스카우트 온 곳 중에서 골라 진학해야지, 뭐.”

“그렇군.....”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하고 되물으면서 아오미네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자신을 직시해오는 그의 눈에 새삼 기분이 좋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나도 진학은 하겠지만, 여긴 아니야.”


자신의 대답에 그의 발이 멈추었다. 자신은 몇 발자국 더 걸어 나가다가 걸음을 멈추곤 그를 돌아보았다.


“여긴 아니야, 아오미네.”

“너... 그게... 무슨 소리냐?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


농구를 할 때의 거칠고 오만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농구를 하지 않고 있을 때의, 귀찮음으로 가득한 나른한 목소리도 아니었다. 살짝 떨림이 묻어나는 것 같은, 그 답지 않은 목소리였다. 이런 목소리는 또 처음 듣는구나 싶어서 피식 웃음을 흘렸다.


“너 지금 웃냐? 장난해?”

“아, 미안. 하지만 장난은 아니야.”

“......”

“미국으로 돌아가게 됐어. 실은 이전부터 아버지가 부르긴 했지만.. 고등학교 졸업이 머지않았으니까 미루고 미뤄뒀었지.”


꽤 오래전부터 혼자 살고 있었다. 그것도 세간의 기준으로 따지면 어린 나이에 말이다. 자신이야 그 사실 자체에 별 생각이 없긴 했지만, 편부 슬하의 외동아들이기도 했고, 심지어 타국에 홀로 나가 사는 것이었으니 일정 주기로 한 번씩 아버지에게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겠냐는 연락이 오곤 했었다. 아직은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자신의 의사를 존중해 아버지는 강제로 자신을 불러들인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이제 미국으로 돌아가는 걸 미루는 것도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선택했다. 고등학교 생활을 마치면 미국으로 돌아가겠노라고. 농구를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래도 진학 자체는 일본이 아니라 미국에서 하겠노라고. 그리고 그 때에는, 이제는 자신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이 마음을 훌훌 털어버리겠다고.


“작별이다, 아오미네.”


아직 작별을 논하기에는 이를지도 몰랐지만, 같이 농구를 하기 힘든 상황인 이상 이렇게 그를 다시 만나는 것은 졸업 전까지는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미리, 그에게 작별인사를 하기로 했다. 무거운 돌을 얹어놓은 것 마냥 가슴 한 구석이 뻐근해져오는 것 같았지만, 애써 그 감각을 무시했다.


“아직 쿠로코에게도 이야기 안 했어. 네가 처음이다.”

“......”

“그녀석이야 학교에서든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으니까 좀 더 있다가 이야기해도 되겠지.”


하지만 넌 아니잖아, 라는 말은 미처 꺼내지 못한 채 다시금 살짝 입술을 끌어올려 웃었다. 이제 이 마음을, 이 감정을 털어버릴 때가 되었다. 알 수 없는 긴장감으로 심장 고동이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난 말이지, 아오미네. 너도, 네 농구도...”

“......”

“좋아...했어.”


차마 좋아해, 라고 현재형으로 이야기할 수 없어 간신히 과거형으로 바꾸어 말했다. 아니, 토해냈다는 쪽에 가까울지도 몰랐다. 이 폭탄 같은 말을 쏟아낸 다음에도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차라리 그가 이 말의 본의를 알아차리지 못했으면 좋겠다, 라고. 자신이 꺼낸 좋아했다는 말이, 연애 감정이 아니라 그저 호불호의 개념에서의 좋아한다는 말이라고 착각해줬으면 좋겠다, 라고.


그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을 모조리 다 꺼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마음이 후련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것도 곧 나아질 거라 생각하며, 아직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은 그를 마주하고 있기 힘들어 눈만 살짝 내리감았다. 하지만 다시 눈을 떴을 땐, 모든 감정을 지운 채 그를 ‘친구로서’ 바라보겠노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읏!”


눈을 뜨고 그를 마주하려는 순간, 시야에 들어온 것은 그의 얼굴이 아니었다.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눈뭉치였다. 눈뭉치는 이미 피하기 힘들 정도로 인접해 있어서 결국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날아오는 눈뭉치를 얼굴로 받아냈다.


“아오미네, 너 이 자식...! 지금 너한테 고백한 사람한테 할 행동이냐, 이게!”


얼굴에 묻은 눈을 손으로 털어내면서, 눈뭉치 던지지 말라고 외치기도 전에 그는 어느 샌가 여러 개 만들어 둔 눈뭉치를 자신에게 던져대기 시작했다. 처음이야 방어를 할 틈도 없었기에 안면 직격이었지만, 지금은 또 상황이 달랐기에 날아오는 눈뭉치를 피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야! 아오미네! 던지지 말라고!”

“뭐래.”


자신의 항변을 가볍게 무시한 그는 무자비하게 연속으로 눈뭉치를 던져댔다. 그 움직임에, 스스로가 ‘고백’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채 그에게 대응하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주변에 널려 있는 눈을 뭉치기 시작했다.


그의 선제공격을 받고 자신이 그것에 응전하기 시작한 것을 기점으로 주변에 널려 있는 눈이란 눈을 모두 끌어 모아 서로를 향해 던져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이상 끌어다 쓸 눈이 없어질 즈음에야 치열하기 짝이 없던 전투는 소강상태를 맞이했다. 이미 입고 있던 옷도, 머리카락도 흩날린 눈 부스러기에 의해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장갑도 끼고 있지 않았던 손은 이미 빨갛게 얼어붙은 지 오래였다. 하지만 농구를 한 것만큼 격하게 움직였던 탓에,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숨결만큼은 다른 어떤 것보다 뜨겁게 느껴졌다.


“하아...... 쓸데없는 데에 힘 뺐네....”

“네가 할 소리냐...... 먼저 시작한 게 누군데.”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네, 하고 그가 대답했다. 하지만 이 말 역시 평소의 그의 목소리와는 달리, 어딘가 힘이 빠졌다고 해야 하나 영 맥을 못 추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의아함과 동시에 걱정스러움이 담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 아오미네. 있잖아...”

“야, 카가미.”

“어?”


그에게 무슨 말이라도 건네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그의 이름을 부르는데, 거의 동시에 그가 자신을 불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듯 하면서도 시선을 살짝 빗겨 던진 상태로 입술을 천천히 움직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


어느덧 무거워져 있는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눈앞의 풍경이 천천히 전환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삼학년 시절의 겨울에서 벗어나, 천천히, 현재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집안의 풍경으로. 추웠지만 그와 더불어 뜨겁기 짝이 없었던 일본의 겨울에서, 상대적으로 따뜻하지만 그래도 춥게만 느껴지는 로스 엔젤러스의 겨울로 되돌아왔다.


“.......”


돌이켜 생각할수록 입맛이 써지는 느낌이라, 떠오른 기억을 털어내기라도 하려는 듯이 고개를 두어 번 좌우로 흔들고는 창가에 놓아두었던 머그컵 쪽으로 손을 옮겼다. 얼마나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냉기가 도는 창가 근처에 놓여있던 머그컵은 차가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커피도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이건 마실 게 못 된다고 생각을 하면서 가볍게 혀를 찼다. 커피포트에서 새로 커피를 따라와야겠다고 이어 생각하면서 차가워진 머그컵을 들어 올리고는 천천히 부엌으로 향했다. 식어버린 커피를 개수대에 부어 버리곤, 따뜻한 물로 컵 안을 한 번 가볍게 헹군 뒤 커피포트가 놓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컵 한 가득 커피를 따르기 시작했다.


얼추 가득 찼다 싶을 즈음 커피를 따르던 손을 멈추곤 포트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머그컵에 손을 대려는 순간, 주머니 안쪽에 넣어두고 잊어버렸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는 아닌데...”


이 시간에 자신에게 문자를 보낼 사람이 누가 있나 싶어서 의아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다가, 손을 주머니에 넣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곤 익숙한 손놀림으로 화면을 터치해 메시지 창을 확인했다.


“송신인..... 아오미네?”


로스 엔젤러스에 돌아온 이래로 그가 자신에게 먼저 연락을 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자신 또한 그에게 연락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간 것처럼, 마치 서로의 인생에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그렇게 상대를 지우고, 또한 상대에 의해 지워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과 다르게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단지 잠자코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거칠고 공격적인 그의 성향과는 다르게, 어울리지도 않게 얌전하고 어른스럽게. 그런 이질적인 그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자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눈물이 흘러나올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 미국 간다. 미리 준비하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일전에 못했던 대답 들려줄 테니까, 바보 카가미.]


‘지금은 네 말, 못 들은 걸로 할 거다. 내가 언젠가 미국에 가게 되면 그때 다시 말해. 그러면 그땐 제대로 대답해줄 테니까.’


“너무 오래 걸린 것 아니냐, 바보.”


그에게 전해질 리도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말을 꺼내는 순간에도 목이 메어오는 것만 같았다. 자칫하면 볼을 타고 흐를 뻔한 눈물을 손등으로 대강 훔쳐내고는 그의 메시지에 답변을 적어 회신했다.


[Still waitin' for you.]

'연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립] In a dream  (0) 2015.01.03
[라쿠잔] 쿠로코의 농구 전력 60분 키워드 : 새해  (0) 2015.01.02
[황립] 키워드 : 나이  (0) 2014.12.27
[황립] 키워드 : 매니큐어  (0) 2014.12.20
키워드 : 바람개비  (0) 2014.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