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하는 것은 약을 챙겨 먹는 것이었다. 어떤 이들은 새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몸으로 태어난 것을 기리는 의식과도 비슷한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히무로에게 있어서는 아니었다. 더할 나위 없이 번거롭기 짝이 없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통칭 히트 사이클이라고 하는 그 때가 올 때를 대비해, 주변에 무분별하게 향을 흘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약. 그 약을 입 안에 털어 넣고, 히무로는 빈 유리잔에 물을 한 가득 따랐다. 그리고 물을 반절 이상 들이켜 약을 단번에 삼켜버렸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가지 않도록 챙겨 먹는 것이라고는 하나, 매번 약의 개수며 복용 횟수를 신경 써야 하는 건 귀찮기 짝이 없었다. 어쩌다 자신은 이런 몸으로 태어나게 된 것일까. 그렇게 고민했던 것도 히무로에게 있어서는 반쯤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약을 먹지 않으면 몸이 나른해지니까.


나른해지다, 라는 표현은 조금 틀릴지도 몰랐다. 하지만 추상적으로나마 몸의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선 그 단어가 제일인 것 같았다. 약을 복용하지 않고 있다 보면, 예의 그 때가 다가오기 시작할 즈음 몸이 녹진하게 풀리는 느낌이었다. 허리를 곧추세우는 것조차 힘들어지고, 손의 악력을 비롯해 근육을 사용하는 것이 버거워졌다.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그런 애매모호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자신을 자극하는 향기를 맡게 되면, 일순 전신을 자극하는 것 같은 강렬한 감각에 절로 자리에 주저앉게 되었다.


자기 자신의 몸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 운동선수에게 있어서는 얼마나 치욕스러운 일이던가. 자칫 향을 맡게 되어서 주저앉게 되고, 그 때문에 시합에 영향을 주게 된다면... 생각만으로도 진절머리가 나는 것 같았다. 자신에게 있어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히무로의 프라이드는, 외부 요소로 인해 자신의 루틴이 망가지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위기는 언제나 예상치 못할 때 찾아오곤 했다. 히무로의 오메가 형질은 통상적인 오메가들과는 조금 달랐다. 그래서 미국에 있었을 때부터 개인 형질에 맞추어 제작한 약을 수시로 먹고 있었다. 하지만 요 근래 특정 알파의 페로몬에 견디기 위해서 평상시보다 많은 양의 약을 먹어댄 탓인지는 몰라도,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약을 소비하고 말았다.


낭패다, 하고 히무로는 입술을 짓이기듯이 깨물었다. 새 약이 도착할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더 걸릴 터였다. 시중에 유통되는 오메가 약을 사다가 먹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그 약으로도 충분했을 거면 예전부터 복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억지로 페로몬을 견뎌가며 생활을 하자니 왠지 모르게 무서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은 늘 한 명의 알파와 붙어 지내고 있었으니까. 약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페로몬을 견딜 수 있었던 거지, 만약 지금처럼 약이 없다면...


분명 그에게 달려들고 말거야.


눈이 풀린 채로, 색욕의 노예가 되어서 그에게 달라붙겠지. 본능이 이끄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여타 사람들은 말하지만, 히무로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도, 이해하기도 싫은 생각이었다. 그 사람 자체에 대한 감정보다 육체적인 욕망이 앞서 상대를 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도덕적 기준이었다. 하지만 그런 냉정한 생각과는 반대로 서서히 몸은 녹아내려가기 시작했다. 시작은 손끝의 감각이 둔해지는 것부터였다. 그리고 그 감각은 서서히 팔을 타고 올라와 전신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종국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려서,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 앉아버렸다.


입술 사이에서 뜨거운 숨결이 흘러나갔다. 입 안에선 단내가 도는 것 같았다. 이성은 점점 흐릿해지고 자신 안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갈구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체온. 달콤한 애무. 그리고 자손을 남길 수 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씨를.


실낱같이 남아 있는 이성은 그런 본능을 거부했다. 하지만 본능은 재차 이성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꼭 저 세 가지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그저 알파만이 자신에게 선사해줄 수 있는 그 아릿하고도 흥분되는 감각만을 달라고. 그것만으로도 자기는 괜찮다며 이성을 어르고 달래듯이 꾀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이성은 본능에 파묻혀 버렸다. 그와 동시에 히무로도 살며시 눈을 내리 감았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무로칭, 왜 오늘은 나 데리러 안 왔구? ...어라?”


무로칭, 어디 몸이라도 안 좋은 거야? 라고 묻는 그의 목소리가 이어 들려왔다. 하지만 자신의 귀에는 멀리서 웅웅대는 소리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히무로는 감았던 눈을 뜨고, 어딘가 몽롱해 보이는 시선으로 무라사키바라를 응시했다.


“아...츠시....”

“볼이 좀 빨간 것 같은데. 어디 아파?”


큰 키의 소유자인 그는 주저앉아 있는 자신을 살피기가 번거로웠는지 미간을 살짝 좁혔다. 그리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자신과 시선을 마주했다. 히무로는 자신의 얼굴을 요모조모 뜯어보면서 상태를 확인하는 무라사키바라를 응시했다.


좋은 냄새가 난다. 아니,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온 몸을 저릿하게 만드는 그런 냄새가 난다. 손발이 저릿저릿하다. 온 몸의 근육이 이완되었다가도 다시 흥분해서 수축하기 시작한다. 머릿속이 핑글핑글 돈다. 체온이 점점 더 상승하기 시작한다. 이제 생각하기도 힘들어. 저 사람을 안고 싶어. 저 사람에게 안기고 싶어. 단지 그뿐이야.


“아츠시... 안아줘...”


안아달라는 히무로의 말에, 무라사키바라는 예의 나른한 표정을 지우고 슬쩍 옅은 당혹감을 드러냈다. 어떤 의도로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히무로로서는 그것에 대해 자세히 풀어 설명할 이성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열에 들뜬 숨을 연거푸 토해낼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무라사키바라는, 히무로의 별칭을 한 번 되뇌듯이 부르고는 양 팔로 그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그리고 커다랗고 두툼한 손으로, 다소 서툴지만 상냥하게 그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기도 하고 토닥여주기도 했다.


내가 바라는 건 이게 아니야. 히무로의 머릿속에서 본능이 외쳤다.

내가 원하는 것은 좀 더 깊은 교감. 좀 더 진한 쾌감. 본능이 이어 외쳤다.


“Atsushi."

"...응?“

“I mean, I want to sleep with you."


말을 마친 후, 히무로는 가까이에 있는 그의 목덜미를 살며시 깨물었다. 그리고 혀를 내밀어 깨문 부위를 가볍게 핥아 올렸다. 평소에는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진성 알파의 짙고 짙은 페로몬이 자신을 휘감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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