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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리마가 사과의 말을 건넨 다음, 타카오는 입을 꾹 다물었음. 마치 미도리마가 건넨 사과의 말을 들은 것처럼. 그럴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미도리마에게는 그렇게 느껴졌음. 타카오는 얼마 동안 이야기를 하지 않다가,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음. "있지,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 네가 사과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평소의 공기? 분위기랑은 다른데, 하고 이전처럼 살짝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타카오는 이야기 했음. 하지만 목소리에서 장난기가 묻어난다고 해서 그게 진심으로 즐겁다거나 한 건 아니라는 건, 인간의 감정에 둔한 미도리마도 잘 알고 있었음. 그러나 그런 식으로라도 분위기 환기를 하고 싶은 타카오의 심정은 알 것 같았기에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음. 타카오는 이어 이야기를 했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이렇게 다시 만난 것만으로도 난 기뻐. 여기 신 님, 할머니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정말 대단한 분이었구나.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란 생각했던 사람... 아, 사람이 아니지, 여튼 그런 존재를 다시 만나게 해줬어. 진짜 뭐라도 바쳐야 할 것 같은 기분이야. 뭘 바치는 게 좋을까. 이전처럼 오시루코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은데. 여기 신 님이 좋아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미도리마는 입을 열었음. [너다, 타카오. 너만 있으면 된다.]
미도리마는 자신이 무심코 꺼낸 대답에 스스로도 깜짝 놀랐음. 하지만 이미 자신의 감정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이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고 생각했음. 물론 실제로 그를 소원을 이루어준 '대가'로서 거두어 가면 안 되겠지만. 미도리마는 잠시 고개를 내저었음. 그냥 이렇게만 있어주는 걸로도 좋았음. 인간의 삶은 덧없기 짝이 없지만, 그 짧은 시간이나마 그가 본인의 생을 자신과 공유해준다면 그걸로도 만족할 수 있었음. 답지 않게 확신은 할 수 없었지만, 여튼 그렇다고 생각을 했음. 미도리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타카오는, 이제 서서히 웃음기를 찾아가는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음.
"나... 내일 또 다시 여기 와도 될까? 너를 만나러 오고 싶어. 신 님이 사당 앞을 만남의 장소로 삼는다고 경을 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널 만날 수 있는 곳은 여기뿐이니까... 다시 널 만나러 오고 싶어. 대답은... 역시 들을 수 없겠지? 나 혼자만의 약속이 되겠네."
마지막 말은 왠지 모르게 씁쓸함이 감도는 것 같았음. 미도리마는 몰랐지만, 타카오는 한 가지 배운 것이 있었음. 한 번 온기를 알아버린 짐승이 그 온기를 갈구하게 되는 것처럼, 온기를 알아버린 짐승이 그 온기를 잃어버리게 되었을 때 얼마나 절박해지는지를. 타카오는 '그'라는 존재를 한 번 잃어버렸기 때문에 더욱 절박해져 있는 상태였음. 안 그런 척 노력하고 있었지만, 스스로는 그저 슬프고 슬퍼서 힘들었을 뿐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지만 타카오에게 있어서 미도리마는 이제 놓을 수 없는 존재였음. 놓치기 싫은 존재였음.
"만나러 올거야."
타카오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이 이야기를 했음. 미도리마는 타카오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음. 그리고 손을 잠시 움직여 신력을 사용했음. 인간에게는 직접적으로 사용할 수 없으니, 무너뜨린 돌탑의 돌을 움직였음. 그리고 그에게 대답을 돌려주었음. [ん(응)] 이라는 문자로써.
이런 식으로 타카오에게 직접적으로 대답을 해준 건 처음일지도 몰랐음. 물론 타카오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들에게 있어서, 미도리마가 직접 대답을 해준 게 처음일지도 몰랐음. 짧은 한 마디의 대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도리마는 살짝 부끄러워지는 것 같았음. 그가 자신을 기다렸던 것처럼, 자신도 그를 기다렸고, 그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걸 직접적으로 알린 것 같아서. 왠지 마음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음. 타카오는 처음에는 움직이는 돌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음. 그러다가 미도리마가 만든 한 마디의 답을 보고는 다시금 눈물을 뚝뚝 흘렸음."아 진짜... 나 원래 이렇게 눈물 많은 애 아닌데. 다 너 때문이야." 미도리마의 탓으로 돌리는 타카오의 말은 불경한 것일지도 몰랐음. 하지만 미도리마는 그 말을 불경하다고 생각하기는 커녕, 오히려 미안하다고 이야기 하며 눈물을 닦아주고 싶다고만 생각했음. 타카오는 눈물을 소매로 슥슥 닦고는 씨익 미소를 지어보였음.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음. "내일 올게. 네가 와도 된다고 했으니까... 꼭 올 거야. 내일 만나. 나 기다리고 있어야 해?" 타카오는 장난스럽게 한 마디를 덧붙인 다음, 이제 후련해졌다는 듯이 숨을 한 번 길게 내쉬었음. 그리고 미도리마가 있는 곳에 손을 가볍게 흔들어 보이고는 천천히 등을 돌렸음.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진 것처럼 보였음.
[따라가라.]
사당을 떠나는 타카오의 등을 바라보면서 미도리마는 한 마디를 덧붙였음. 미도리마의 언령에 따라, 바람 한 조각이 날아가 타카오의 등에 살며시 붙었음. 이 바람이 타카오의 행방을, 타카오의 주변 상황을 미도리마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전달할 거였음. 타카오가 미도리마에게 각인되었듯이, 미도리마도 타카오에게 각인된 이상 미도리마는 이제 거리낄 것이 없었음. 타카오의 인생을 하나도 빠짐 없이 지켜봐주겠노라 생각했음. 자신이 사랑하는 인간을 위해서.
타카오에게 붙여둔 바람은, 타카오의 곁에 머물면서 겪은 것들을 '기억'으로 남겼음. 그리고 그 기억을 고스란히 신에게 보여주었음. 서로 떨어져있다 하더라도, 미도리마는 타카오의 일상 등에 대해서 알 수 있었음. 가족들과 행복하게 웃는 모습,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노는 모습, 때때로 공부를 하면서 머리를 싸매는 모습... 미도리마에게는 생소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일상이었지만, 타카오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 기억은 매우 흥미로웠음. 그가 살고 있는 곳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있는 사당에서, 미도리마는 그 기억을 몇 번이고 돌려보면서 타카오가 자신을 다시 찾아오기만을 기다렸음. 그렇게 그를 만나고, 돌려보내고, 다시 만나고, 또 다시 돌려보내는 일과를 반복했음. 그러다가 여느 때보다 둥글고 큰 보름달이 뜬 날 밤, 미도리마는 사당 밖으로 걸어나왔음. 사당 주변에 친 결계를 빠져나와, 인간세상으로 향했음. 그리고 타카오가 살고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음. 이런 아름다운 밤에는 잠을 청하기도 힘들터인데, 타카오는 그것에 개의치도 않는다는 듯이 쿨쿨 잘도 자고 있었음. 미도리마는 마치 녹아들듯이 타카오의 집 안으로, 방 안으로 향했음. 그리고 곤히 잠들어 있는 그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머리맡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음. [타카오.] 미도리마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다가 손을 들어올렸음. 그리고 그의 뺨 위에 가볍게 손을 얹었음. 처음으로 미도리마 쪽에서 인간과 접촉했음. 잠든 그의 심상과 미도리마의 심상이 천천히 연결되기 시작했음.
미도리마가 잠시 눈을 감았다 떴을 땐 풍경이 바뀌어 있었음. 분명 미도리마가 있는 곳은 타카오가 잠들어 있는 침실일텐데,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아주 낯익은 곳이었음. 다름아닌 미도리마의 사당 근처의 풍경이었음. 미도리마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듯이 그 풍경을 시야에 담았음. 하지만 미도리마가 보고 있던 '진짜' 풍경과는 뭔가가 조금 달랐음. 좀 더 생기가 넘치는 것 같기도 하고 묘하게 왜곡된 부분도 있는 것 같았음. 미도리마가 보고 있는 것은, 타카오의 꿈 속. 타카오가 꿈속에서 보고 있는 심상이었음. 접촉한 것만으로 인간의 꿈속을, 속내를 접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묘한 기분이 되었음. 물론 직접 시도해본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지만,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진짜 되니까 미묘한 그런 심정에 가까웠음.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미도리마는 무의식적으로 꿈 속에 있을 타카오를 찾았음. 하지만 사당 근처에서는 타카오를 볼 수 없었음. [타카오의 꿈이 아니었던가.] 타카오의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타카오가 없었음. 미도리마는 순간 당황했음. 그럼 자신은 누구의 꿈에 흘러들어온 것인가? 미도리마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즈음, 사당으로 들어오는 입구 쪽에서 타카오로 보이는 인영이 걸어들어오기 시작했음.
[타카오.] 순간 다른 이의 꿈속에 들어온 건가 싶어서 답지 않게 당황했었는데, 타카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자 안심이 되었음. 그래서 미도리마는 다소 밝은 목소리로 타카오의 이름을 불렀음. 타카오가 점점 더, 미도리마에게 가까이 다가왔음. 그리고 타카오의 발걸음이 어느 위치에서 멈추었을 때, 미도리마는 또 다시 이상한 점을 발견했음. [타카오? ..... 조금 자란 것 같다는 것이다....?] 타카오의 눈높이가 이전보다 조금 더 높아져 있었음. 그리고 체격 또한,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타카오의 체격보다 단단해져 있는 것 같았음. 마치 나이를 먹어서 성숙해진 것처럼. 그것에 생각이 미친 순간 미도리마는 잠시 눈을 크게 떴음. 타카오는 살짝 시선을 들어올려 미도리마를 바라보았음. 타카오의 눈에도 살짝 놀라운 기가 어리는가 싶더니, 이내 타카오는 특유의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음. "와, 이젠 얼굴까지 보이네. 어디까지 제멋대로인거야, 내 무의식은." 요 근래 사당에 찾아오는 꿈을 평소보다 많이 꾸는가 싶더니, 이제 얼굴까지 상상해서 꾸게 될 줄은 몰랐다며 타카오는 폭소를 터뜨렸음. "그래도 잘생겼네. 분위기도... 숲이랑 닮았어."
[....] 지금 타카오의 눈에 비추이는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미도리마는 알 수 없었음. 하지만 서로의 심상이 연결되었으니, 그에게 자신의 본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하고 막연하게 생각을 했음. 그리고 자신의 본 모습이 그에게 보이고, 그가 그 모습을 보고 잘생겼다고 해준 거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음. 그렇다면 그는 자신의 본 모습에 호감을 느낀 걸테니까. 미도리마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연심이 담뿍 담긴 잔잔한 눈으로 타카오를 바라보았음. 그리고 잠든 그에게 했던 것처럼, 손을 살짝 들어 올려 타카오의 뺨 위에 가볍게 얹었음. 꿈인데도 불구하고 인간의, 타카오의 체온이 손바닥을 통해서 전해지는 것 같았음. 느닷없는 자신의 행동에 조금 놀랐는지 긴장감이 어린 떨림도, 그러나 이내 마음이 놓였는지 부드럽게 가라앉은 움직임도 모두 미도리마에게 전해졌음. 타카오는 잠시 놀랐지만 이내 눈을 살며시 내리감으면서 미도리마의 손길을 받아들였음. "역시 꿈속에서는 뭐든지 할 수 있다더니... 내가 바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닿을 수 있다니... 행복해. 응, 진짜 행복하다. 요새 꾼 꿈들 중에서 최고의 꿈이야."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타카오는 고개를 움직여 미도리마의 손바닥에 볼을 부비는 것 같은 행동을 취했음. 그리고 장난기 어린, 그러나 어딘가 수줍음도 묻어나는 것 같은 미소를 지어보였음. 그 미소를 지켜보고 있자니 미도리마의 가슴 한 구석도 간질간질해지는 기분이었음. 이것이 연인을 바라보는 기분인가. 이것이 연인들 사이의 교감인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된 미도리마는, 다시 한 번 더 타카오의 뺨을 만지작 거리다가 손을 거두어 들였음. 그리고 몸을 살짝 숙여, 드러나 있는 타카오의 이마에 가볍게 입술을 맞추었음. 다소 충동적으로 한 행동이었지만, 그 행동은 미도리마에게 설렘을 안겨주었음. 그리고 타카오는 미도리마의 행동에 작게 웃음을 터뜨렸음. "진짜 최고잖아. 나 이마에 키스 받아본 적 없는데! 아니, 부모님이 해주셨을 수도 있지만 내가 그런 의미로 좋아하는 사람에겐 받아본 적 없다구? 내 무의식 일 제대로 해서 다행이다 진짜." 그러면서 계속 웃던 타카오는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지, 제 손바닥을 주먹으로 통 하고 한 번 쳤음. "그러고 보니 이거 꿈이잖아? 내 멋대로 해도 되는 거 아냐? 그럼 이마의 키스만으로 만족할 순 없지!" 그렇게 이야기 한 타카오는, 양 손을 미도리마에게로 뻗었음. 그리고 약간 높은 위치에 있는 미도리마의 양 어깨에 손을 턱 하고 얹었음. "잘 받아가겠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타카오는 미도리마의 몸을 자신의 쪽으로 살짝 끌어 당겼음. 그리고 미도리마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음. 이어 당연한 수순이라는 듯이 미도리마의 입술 위에도 본인의 입술을 살며시 겹쳤다 떼어냈음.
미도리마는 얼떨결에 뺨에도 입맞춤을 당하고 입술에도 입맞춤을 당했음. 지금까지 이래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반응도 하지 못하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음. 타카오는 그 모습을 보더니 크게 웃음을 터뜨렸음. "반응까지 최고야! 하기사 내가 보고 싶은 모습을 보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만 이거 진짜 대박인데. 귀엽잖아!" 키도 나보다 큰데, 얼굴도 진짜 잘생겼는데, 분위기도 정말 인간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풀풀 풍기는데도 마치 인간 같다면서, 타카오는 연신 폭소를 하다가 눈물을 흘릴 정도가 되었음. "하...너무 웃었더니 눈물이 다 나네. 배도 아픈 것 같아." 여전히 키득거리는 것 같은 목소리로 타카오가 이야기 했음. 미도리마는 딱딱하게 굳어 있다가 시간이 조금 흐르자 정신을 차렸음. 그리곤 타카오를 가볍게 흘기면서, 웃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뾰로통한 표정을 지어보였음. 그 얼굴을 올려다 보던 타카오는 다시금 웃음을 터뜨리다가, 웃음이 잦아들 즈음 미도리마의 품에 폭하고 안겼음. 그리고 싱그러운 풀내음이 나는 미도리마의 기모노 위에 얼굴을 살짝 묻었음.
"있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신 님의 신부라던가, 요괴의 신부라던가 하는 이야기. 기본적으론 제물로 바쳐지는 이야기를 곱게 포장한 거라고 하지만... 왠지 너를 알게 된 이후로는 그런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싶었어. 적어도 내게는 사랑이 존재하는 거니까 말이야. 물론 이런 말 하면 다른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 게 분명하니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지만. 지금은 꿈 속이니까 괜찮겠지? .... 네가 요괴든 신이든 좋으니까, 나를 신부로 맞아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 성별은 제쳐두고. 아마 네 이상으로 내가 누군가를 좋아할 것 같지도 않고, 이미 네게 홀려버려서 다른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까. 이렇게 본 적도 없는 네 모습을 상상해서 꿈에 등장하게 할 정도로 말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당으로 찾아가는 것 정도 뿐이니까, 날 맞이하러 오는 건 네가 해줬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
"어때? 날 맞이하러 오지 않겠어? 그만큼 널 사랑하고 있어. 사랑하고 있습니다."
중얼거림에 가까운 말을 속삭이던 타카오가 살짝 고개를 들어올렸음. 미도리마는 타카오의 기나 긴 말을 들으면서 다시금 욕심이 생기는 것 같았음. 그를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했는데, 그가 먼저 자신에게 맞이하러 와달라고 이야기를 한 거임. 신의 신부가 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육체를 버리고 그 영혼만이 영생을 사는 것. 즉 인간으로서의 죽음을 한 번 겪어야 한다는 것이었음. 마음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그를 신부로 들이고 싶었지만, 신이 사리사욕을 위해 인간의 명을 거두어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음. 그래서 미도리마는 잠시 생각에 잠겼음. 그리고 눈을 한 번 감았다 뜬 후에 천천히 입을 열었음. 이것은 평범한 말이 아닌 언령. 인간의 마음에도 울리는 생각의 파동이었음.
[[네게 단 한 번의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시기는 네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게 되었을 때...]]
[[네가 성인이 되었을 때, 다시 한 번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그대로 평범한 삶을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내 신부가 될 것인지.]]
[[타카오, 넌 아직 어리고 어리다.]]
[[그러니까 좀 더 생각을 해보도록 해. 날 찾아오지 마라. 네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나는 사당의 주인, 이 지역을 다스리는 신 '미도리마']]
지금의 말을 '계약'으로 삼아 타카오가 성인이 되었을 때, 선택에 대한 대답을 들으러 가겠노라고, 미도리마는 스스로의 본명을 밝히면서 이야기 했음. 그리고 계약을 확실히 묶기 위해서, 이번엔 미도리마 쪽에서 고개를 숙여 타카오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음. 미도리마의 힘이 계약의 인이 되어 타카오를 옭아맸음. 계약이 끝나자 꿈의 세계가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음. 미도리마는 사당에서, 타카오는 인세에서, 서로 만나지 않고 지내게 되는 나날이 시작되었음. 하루가 멀다하고 만나던 것이 마치 한 여름 밤의 꿈이었던 것처럼.
어느덧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잎사귀가 지고, 나무들이 헐벗기 시작했다.
청량하게만 느껴지던 공기는 또한 어느새 폐부를 얼릴 것처럼 차가워져만 갔다.
더 이상 푸르지 않은, 은회색으로 물든 하늘을 바라보면서 숨을 잠시 내쉬었다.
입술 사이로 희뿌연 김이 새어 나가더니, 곧 공기중으로 스러졌다.
뒤를 돌아보았다.
다가오는 겨울에도 시들지 않은, 푸르른 내음을 지닌 자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어. 미도리마."
자신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는 그 손을 잡아주었다.
겨울에 잠식되어가는 세상이 푸른 녹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신의 이름을 따라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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