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이렇게 어그러지게 된 원인은 단순하다면 단순했다. 그의 귀에 흘러들어간 한 마디의 말 때문이었다.


[마유즈미 공이 아카시 님을 바라보는 시선은, 마치 여인이 자신의 정인을 보는 시선 같군요.]


자신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만지며 그 말을 꺼냈던 여관은, 별 생각 없이 이야기를 했던 것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한 뒤, 손을 거두어들이고 쥘부채를 꺼내들어 본인의 입을 가리며 호호 웃었으니까. 그리고 본인의 입이 주책이었다며, 자신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자신 혼자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후궁에 인접한 곳이었기 때문에 왕래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고는 하나, 이곳 또한 아카시 가문과 연관되어 있는 이들이 오고가는 장소였다. 황제의 뒤에서 천하를 호령하는 아카시 가문이니, 황궁 깊은 곳까지 아카시 가문의 눈과 귀가 심어져 있는 것은 당연했다. 여관으로서는 자신과 그녀, 단 둘이 주고받은 농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 말은 가문의 눈과 귀를 통해 전달되어 최종적으론 아카시에게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실은 자신도 아카시가 직접 자신을 찾아오기 전까지는 그리 심각하게 여기고 있지 않았다. 어차피 농은 농일 뿐. 그리고 여관이 한 말은 아카시를 모욕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여인에 빗댄 것뿐이니 그의 심기에 거슬릴 것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멋대로, 자신의 잣대로 그의 생각을 추측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추측이 빗나갔다는 것은, 그가 살벌한 기운을 내뿜으며 자신의 방문을 열어 젖혔을 때 깨달았다. 옅은 미소를 짓고 있던 평소의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차가운 얼음 같은 표정만이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예상과는 다른 그의 반응에, 최대한 그를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하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자신에게 맡기고 간 서안을 대강 훑어보고 있던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찾아온 그를 맞이하기 위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카ㅅ....읏...!]


자신이 그의 이름을 입에 담기도 전에, 그가 자신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손을 뻗어 자신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얼마나 힘을 주어 잡았는지, 잡힌 머리채가 당겨질 때마다 두피에서 투둑 투둑 하며 머리카락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따끔한 통증도 찾아왔다. 통증 때문에 반사적으로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만 두라고, 다시 한 번 그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들은 체도 하지 않은 채, 머리채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고개를 더욱 숙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꿇어.”

[읏...]

“꿇으라고 했어.”


그 말은 명령이었다. 그의 명령에 자신의 몸은 자연스럽게 복종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자세를 숙여 그의 발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행여 눈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의 심기를 더욱 거슬리게 할까봐, 머리채를 잡힌 그대로 눈을 아래로 내리 뜨고 있었다.


그것으로 끝났으면 다행이었을 것을. 아카시는 자신의 이런 순종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잡은 머리채를 끌어 올려 억지로 고개를 들게 했다. 올려다보는 자신의 시선과,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그의 붉은 홍채에서는 분노가 감도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다른 한 쪽, 보다 색소가 옅은 눈에는 살기가 감도는 것 같았다.


단지 농담 한 마디였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분노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것도 놀림의 대상이 된 것은 그가 아니라 자신이었는데. 그의 눈을 바라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머리채를 쥔 손에 다시금 힘이 들어가자 생각이고 나발이고, 낮은 신음을 토해내게 되었다.


[읏...]

“재미있는 소리가 들리더군. 그것에 대해 변명할 생각은 없는 건가, 치히로?”

[변명이고 뭐고 그건 단지...]


농담이었을 뿐이었지 않냐고 그에게 되물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머리채를 잡고 위로 끌어올리자 미처 말을 마무리 할 수가 없었다. 어찌나 세게 끌어당기고 있던지, 무릎을 꿇고 있던 자신의 몸이 살짝 일으켜 세워질 정도였다.


[아...팟.....]

“아프다고? 당연하지. 이것은 벌이니까.”


그의 목소리에 조소기가 묻어났다. 그리고 머리채를 잡고 있는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이내 방바닥에 내던지듯이 손을 놓아주었다. 그 바람에 쓰러지듯이 풀썩 그 자리에 엎어졌다.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았다. 평소엔 온후하다가도 이따금 사람 같지 않을 정도로 냉정한 모습을 보이는 그였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적어도 상황을 직시한 적절한 사리판단 내에서 움직였다. 그 방법이 잔혹할지언정.


그러나 이번에는 그 경우에 해당하는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그의 변화에 적응을 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이유를 묻는 자신의 목소리에, 방 한 쪽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던 그가 자신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찾은 물건을 손에 쥔 채, 이쪽으로 걸어와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싸늘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주제를 모르고 경거망동하는 식신에게, 스스로의 위치를 깨달으라고 내리는 벌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주제넘게 행동했던 적은 없는 것 같았다. 아니, 같은 게 아니라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것은 옳지 못한 것이라고 그에게 항변하려고 했다. 그가 다시금 자신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들어 올리지만 않았더라면 그 말은 똑똑히 입 밖으로 흘러나갔을 터였다.


무슨 짓을 하는 거냐고 묻기도 전에, 그가 다른 한 쪽 손에 들고 있는 것을 휘둘렀다. 방 안에 켜놓은 촛불에 번뜩이는 것을 보아하니 날붙이인 듯 했다. 그리고 쥐고 있는 모양새를 언뜻 확인하니, 그가 쥐고 있는 것이 단도가 아니라 가위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그것을 깨달은 순간 머리 쪽이 허전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가 손을 놓아준 것인가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주변에 한 올 한 올 떨어지기 시작하는 은빛 실과도 같은 것에, 천천히 어떻게 된 상황인지 깨닫기 시작했다. 은사가 아니었다. 지금 제 주변에 흐트러지고 있는 것은, 거의 발치까지 길게 기르고 있던 자신의 머리카락이었다. 그가 손을 놓아주었기 때문에 머리가 자유로워진 것이 아니라, 그가 가위로 머리채를 잘라내었기 때문에 자유로워진 것이었다.


어째서, 라고 묻는 것 같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손에 쥐고 있던 머리카락 뭉치와 가위를 방구석으로 내던졌다.


“이걸로 처벌이 끝난 줄 알았다면 오산이야.”


무슨 말이냐고 묻기도 전에 그가 자신의 손목을 잡아챘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밀어 젖혀 바닥에 눕히고는,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고정시키며 서서히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는 언제나 위압감이 넘쳤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위압감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느끼고 있었다. 말로는 잘 표현할 수 없었지만, 굳이 한 단어로 표현하라고 하면 ‘위기감’에 가까웠다.


그가 자신의 귓가에 뭐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말을 이해할 겨를이 없었다. 겹겹이 입고 있는 옷 사이로 그의 손이 밀고 들어오더니, 자신의 맨 살갗을 훑어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눈 깜빡할 새에 그 옷가지를 모조리 벗겨내고는 그 또한 한 겹 한 겹 본인의 옷을 벗어 내렸다.


값 비싼 비단 옷들이 한데 뒤엉켜 나뒹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그 옷이 구겨지든 더러워지든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자신만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손을 움직였다. 그 손길에서, 그의 품 안에서 벗어나려고 바르작거렸지만 이미 제 몸의 통제권은 그에게로 넘어가 있는 상태였다. 자신은 그에게 속박되어 있었다.


간간히 그에게서 감탄 어린 말이 흘러나왔던 것도 같았다. 하지만 경황이 없어 그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어느 샌가 자신의 입술 새에서 뜨거운 숨과 함께, 앓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남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은밀한 부위에, 그가 무언가를 밀어 넣기 시작할 땐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릿한 통증이, 느껴져서는 안 되는 부위에서부터 느껴지고 있었다.


이걸로 끝이겠거니. 조만간 그가 떨어지겠거니, 하고 통증을 견뎌냈다. 그리고 그가 삽입했던 무언가를 빼내었을 땐 약간이나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허나 그런 자신을 내려다보며 그가 비릿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자세를 조금 바꾸더니 이내 거칠게 밀고 들어왔다. 아까의 통증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격한 고통이 온몸으로 퍼져갔다.


그 뒤는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뒤섞여가는 거친 숨소리와, 어디서 나는 건지 모르는 질척거리는 소리뿐이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전해지던 격통과 함께 아릿한 통증도 몸에 새겨졌다. 그 통증이 새겨진 몸에는 붉은 꽃잎 같은 자국들이 남았다. 격통이 느껴지던 곳에는 액체로 질펀하게 젖어 들어간 것 같은 기분 나쁜 감각이 남아 있었다.


[...]


누워 있던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둔부에서부터 척추를 내달리듯 올라가는 고통에, 절로 이를 악물게 되었다. 간신히 그 통증에 익숙해졌을 즈음에야, 이 방 안에 자신을 제외한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일어났나보군.”

[...]


그가 자신을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했다. 자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다가 그의 눈동자를 보게 되었을 때, 자신도 모르게 흠칫하고 말았다. 어제 그의 눈동자가 분노와 살기로 번뜩이고 있었다면, 오늘은 또 달랐다. 마치 길거리의 돌멩이를 보는 것처럼, 무가치한 무언가를 보는 것처럼 아무런 감정도 묻어나지 않는 눈이었다. 불안감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효용가치가 사라진 말은 버린다는 것이 내 원칙이지.”

[...아카시...]

“넌 더 이상 필요 없다.”

[...]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 그림자여.”


불안감은 적중했다. 그리고 ‘그림자’는 주인이었던 자에 의해 부여받았던 이름을 빼앗겼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더 이상 ‘자신’이 아닌 그림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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