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단지 알 수 있었던 것은, 눈을 뜨고 보니 어느새 카가미 자신이 침대 위에 누워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진정시키고 있던 그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는 점이었다.


어디로 간 거지.


혹시 자신의 힘으로도 감정 제어가 안 된 탓에 그가 폭주해버린 것은 아닐까. 아니면 힘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본능적으로 이곳을 빠져나가다가 다른 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현듯 부정적인 상상이 카가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막아야 해.


자신의 불찰이었다.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제지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것을 숙지하고 있으면서도 마음을 놓아버렸다. 적어도 자신이 이곳에 온 이후로 발작적으로 일어나는 폭주는 없었다고 전해 들었으니까. 그리고 자신 또한 그의 폭주를 실제로 본 적이 없었으니 안심하고 있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더욱 신경을 썼었어야 했는데. 그의 감정을 끌어안았어야 했는데. 달래주었어야 했는데. ‘내가.’


후회와도 같은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카가미는 무의식중에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더 늦기 전에 그를 붙잡아야만 했다. 그의 손을 잡아주어야만 했다. 그 생각이 온 머릿속을 잠식해가자,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워 침대 아래로 두 발을 내딛었다. 몸을 덮고 있던 이불이 툭, 하고 묵직한 소리를 내면서 발치에 떨어졌다. 그러나 카가미는 주변을 돌아볼 새도 없이, 나가는 문만을 응시하며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가 자신의 손목을 잡아채지 않았더라면 곧장 밖으로 나갔을 터였다.


“갑자기 일어나는 것 같더니,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려는 거야? 화장실?”

“...?”


퉁명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비꼬는 어조가 섞인 낮은 목소리가 카가미의 귓가에 닿았다. 누군가에게 붙잡힌 손목을 한 번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어 올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나른하면서도 염세적인 분위기가 도는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얼굴의 주인은, 다소 황당하다는 듯한 눈으로 카가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신장 자체는 그리 차이가 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무심코 내려다보고 있다고 생각해버렸다.


“아...오미네...?”

“그래.”

“진짜...?”

“진짜가 아님 뭔데? 나 같은 놈이 나 말고 또 있을 리가 없잖아.”


나 참, 잠에서 깨보니 덩치 산만한 놈이 곁에서 내 손을 잡고 있질 않나, 심지어 내 얼굴 가까이에 고개를 묻고 잠들어 있질 않나. 그는 어이없다는 어조로 불평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덩치 산만하고 심지어 잠들어 있었다는 말 외에도 여러 가지 불평을 쏟아내었지만, 그 불평은 카가미에게는 닿지 않았다. 아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는 것이 맞을지도 몰랐다. 지금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아직 이곳에 있다는 점이었으니까. 어디론가 떠난 것도 아니고, 어디론가 끌려가버린 것도 아니었다. 그것만이 중요했다.


“다행이다, 다이키...”


카가미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과 함께 짤막한 말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그의 얼굴 표정이 서서히,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여러 가지 표정을 지으며 물끄러미 응시하는 것 같더니, 이내 핫, 하고 숨도 웃음도 아닌 묘한 것을 한 번 뱉어내고는 입을 열었다.


“뭐야. 그 새끼들이 너한텐 내 이름도 알려주든? 다른 가이드 놈들에게는 보안이다 극비사항이다 뭐다 하면서 코드네임만 알려주더니.”

“코드네임?”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를 마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그것도 모르냐고 되묻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코드네임 ‘아오미네.’ 뭐, 내 경우는 코드네임이자 성이지만. 풀 네임은 아오미네 다이키.”

“...”

“그래서, 그 새끼들이 내 이름까지 알려줄 정도로 유능하신 가이드님의 이름은 뭐지?”


내 이름을 알려줄 정도로 그 새끼들에게 신뢰받고 있으면 통성명쯤은 해야 되지 않겠어? 라고 그가 덧붙이며, 한쪽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비웃음에 가까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얼굴을 잠시 동안 응시하고 있다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그 말을 꺼낸 순간, 그에게서 불쾌감이라는 감정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직 맞닿아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의 감정이 더욱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뭐야, 그쪽은 내 이름까지 알아놓고 이쪽에겐 알려주기 싫으시다?”


이제 빈정거리는 어조를 숨길 생각도 없는 그의 목소리에, 카가미는 황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게 아냐.”

“그럼 뭔데?”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잠시 주저했다. 그는 자신의 정보에 대해서 들은 바가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올 때 자신의 발언을 통제하려는 생각은 없어 보이기도 했다. 이 점이 카가미를 갈등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곧, 선을 넘지 않을 정도의 신상 정보를 제공하는 건 괜찮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심을 굳혔다. 결심을 굳혔을 때 바로 입을 열었다.


“난 내가 ‘카가미’이고 가이드라는 것 정도밖엔 몰라.”

“뭐?”


그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의 반응이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다. 하긴 카가미 자신이 그의 입장이었더라도, 지금 꺼내는 말은 단번에 이해하기 힘들 터였다.


“흔히 말하는 기억상실이다. 그들에게 거두어지기 전의 기억은 없어. 전무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사고 탓인지 뭔지 우연히 가이드로서의 능력을 자각했고, 그래서 그들 눈에 띈 이래로 줄곧 그들은 나를 카가미라고 불렀다. 솔직히 난 내 본명조차 기억나질 않으니까, 카가미라는 건이 그들이 붙여준 이름이겠거니 했는데... 네 말을 들어보면 단순한 코드네임이었을지도 모르겠네.”


스스로도 기억 못하는 본명이라니, 이보다 보안이 철저할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인걸. 왠지 웃음이 나는 것 같아서, 피식 웃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리고 아직 웃음기가 덜 가신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바라보게 된 그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 것 같았지만, 잘못 봤겠거니 하고 생각을 하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미안하다. 본명을 이야기 해줄 수가 없어서.”

“....진짜냐?”

“기댈 하늘은 없지만, 관용구를 빌리자면 ‘하늘에 맹세코.’”


사뭇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하자, 그가 자신을 응시하다가 이내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모르긴 몰라도 어느 정도 자신의 이야기를 믿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재미없게 됐네. 결국 너도 도구라는 거 아냐.”


부려 먹히는 신세라니 너나 나나 딱하구만, 하고 그가 공허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 말에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그저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무겁게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그는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이, 슬그머니 잡고 있던 손목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그 손으로 본인의 뒷머리를 문지르듯이 긁적이다가, 한 발 앞서 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방문 앞에 서서 문손잡이를 잡고 돌리던 그는 마지막으로 슬쩍 자신에게로 시선을 한 번 던졌다. 그리고 툭 한 마디를 내뱉었다.


“... 타이가.”


그가 잠결에 내뱉었던 이름이었다. 다시 한 번 심장이 크게 뛰었다.


“내... 가 알던 녀석 이름이야. 너, 그 녀석이랑 뭔가 비슷하니까. 내가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을 정도로. 그러니까 내키면 그 이름 쓰던지.”


그런 다음 그가 방문을 열고 나가고, 문이 닫히기 전 그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한 말이 어렴풋이 들렸다.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였지만, 내용만큼은 확실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침 잘 먹었다는 말이었다. 퉁명스럽게 흘러나온 그 말에 조금 기분이 좋아져서, 카가미는 낮게 목을 울리면서 웃었다. 그렇게 한동안 웃고 있다가, 문득 잊고 있었던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내가 아오미네에 대한 정보를 받은 적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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