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립] Like a Butterfly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중간부터 꼬여버렸던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애초에 첫 단추를 잘못 끼워 넣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건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이 관계의 결말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
시야 한 가득 펼쳐진 하늘은 여느 때보다도 유독 푸르렀다. 그 푸른 빛깔에 눈이 시리다고 생각할 정도로. 무심코 하늘을 향해 한쪽 손을 뻗어보았다. 금방이라도 닿을 것 같았지만, 손끝에 걸리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닿을 것 같으면서도 닿지 않았다. 그러던 중 산들바람이 손끝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바람.
그는 바람과도 같았다. 언제나 자유로워 보였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자유분방한 사람이었다. 때로는 땀을 식혀주는 부드러운 바람 같으면서도, 때로는 상대를 얼려버릴 것 같은 북풍과도 같은 면모를 가지고 있는, 그런 이중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서 좋았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단 의미였으므로.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기 때문에, 본인 기준에 벗어난 것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냉정해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조금씩이나마 신뢰를 받는다는 것은, 그런 사람이 조금씩 자신을 의지해온다는 것은, 솔직히 말해서 우쭐해질 정도로 기분 좋았다. 그것은 그의 안에서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점점 커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니까. 자신이 그에게 점점 더 큰 영향력을 끼칠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오만이었다.
바람은 곁에 묶어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가두려고 해도 가둘 수 없는 존재였다. 또한 통제가 되지 않는 존재였다. 그를 향한 자신의 마음이, 감정이 변질되어갈 즈음, 그 또한 변해가기 시작했다.
초기의 변화는 아주 미미했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지어보이던, 예의 그 미소가 조금 늘어난 정도였다. 그것을 미처 눈치 채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냈을 땐 이미 늦은 상태였다.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가면 너머로, 그는 까맣게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본인도 어떻게 통제를 할 수 없는 감정으로 인해서. 지울 수 없는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탓에 생겨버린 분노. 사랑의 편린이 변질되어버린 증오. 이 모든 것이 그를 잠식해나가고 있었다. 아니, 이미 그것이 그 자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는 더 이상 바람이 아니었다. 그에게 닿는 것을 모조리 끌어당겨 삼켜버리는, 독을 내뿜은 깊고 깊은 늪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찾아왔다. 그리고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그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고. 그가 의지하려고 하면 좋아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아닌 척 태연하게 있으려 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다고. 눈에 빤히 보이지만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해서 그냥 모르는 체 하고 있었다고.
그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있었다. 그는 원래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걸 잊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에 취해, 그가 기대어 오곤 한다는 우월감에 취해 스스로 눈을 가려버리고 있었다는 걸 그의 말을 통해서 깨달았다. 새삼 다시 깨달은 사실에 충격을 받고 있자니, 그가 입술을 슬쩍 비틀면서 웃었다. 그것은 예의 천진한 미소도 아니었고, 대외적으로 보이곤 했던 가식적인 미소도 아니었다. 상대의 어리석음을 신랄하게 비꼬고 있는 것이었다. 상대의 우둔함을 비웃고 있는 것이었다.
정곡을 찔린 채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니, 비웃고 있던 그가 건조한 어투로 말을 건넸다. 어차피 다 알고 있으니 한 번 선심 써주겠다고. 게다가 그도 기분을 풀 곳을 찾고 있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니냐면서,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자신이 입을 다물고 있자, 그는 그것이 승낙의 의미라고 생각을 했는지 손으로 자신의 턱을 가볍게 그러쥐듯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숙여 입을 맞추려고 했다. 그때 자신이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면, 입을 맞추고 끈적하게 혀를 얽었을지도 몰랐다.
[위로해달라는 거야?]
툭 내뱉은 자신의 말에, 다가오던 그의 입술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코앞에 있는 그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져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위로? 지금 위로라고 했슴까?]
앙 다물린 그의 입술 사이로, 으르렁 거리는 것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가 다시 말을 덧붙였다.
[위로 같은 거 바라지 않슴다. 이건, 내가, 당신에게 봉사를 하는 검다.]
몸소 말이죠, 라고 말을 마치는 순간 시야가 어두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다음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의 손에 이끌려 자신의 자취방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을 대강 잠근 뒤 내던져지듯이 침대 위에 눕혀졌다. 일사천리에 모든 것이 마무리 지어졌다. 옷이 벗겨지는 것도, 자신의 맨살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이던 그의 손놀림도, 안쪽 깊숙한 곳을 파고드는 격통도.
그때의 기억은 여러 장의 사진을 보는 것처럼 띄엄띄엄, 단편적으로만 남아 있었다. 그의 밑에서 반은 울면서, 반은 헐떡거리면서 있던 것. 그렇게 원하던 거면서 왜 우는 거냐고 윽박을 지르는 그의 얼굴. 정신을 놓고 싶은데도 그렇게 되질 않아서, 미약한 목소리로 그에게 그만해달라고 애원한 것. 그리고 난생 처음 느껴보는 이질적인 감각을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정신을 놓았던 것.
눈을 떴을 땐 모든 게 끝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곁에 없었다.
몸에 남아있는 통증을 끌어안으면서 생각했다. 그래도 한 번이라도 그의 사람이 될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고. 인연이 끝날지언정 잊을 수 없는 기억 하나는 안고 갈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그렇게 상처 입은 자신을 스스로 위안했다.
“그때부터가 문제였던 건가.”
단 한 번이라고 생각했기에 어떻게 해서든 스스로를 추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의 흐름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한동안 자신을 찾아오지 않던 그는, 어느 순간 불쑥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첫날 밤’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눕히고, 이기적인 움직임으로 자신을 안은 뒤 훌쩍 떠나버렸다. 그런 밤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풀이 되었다. 이런 관계는 그만두자고 이야기 할 수 있었던 순간도 많다면 많았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되풀이 되는 행위에 매번 상처를 입으면서도, 그 행위를 하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그를 소유할 수 있단 생각에 실낱같이 이어진 아슬아슬한 관계를 놓을 수가 없었다.
지독하기 짝이 없는 이기심이었다.
그 이기심이 자신을 좀먹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변해버린 그를 더욱 망가뜨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놓아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술을 마신 채로 자신을 찾아왔다. 자신을 찾아올 때면 술을 마시지 않아도 술에 취한 것처럼 거칠던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인사불성에 가까웠다. 자신에게 뻗는 손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비틀비틀 안쪽으로 걸어 들어오는 그를, 안듯이 지탱해주고는 조심스럽게 부축해 침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침대 위에 무너지듯이 몸을 뉘인 그는 베개에 고개를 파묻었다. 이윽고 억눌린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가 누군가의 이름을 읊조리듯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이름은 흐느낌에 가려져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이리도 애달프게 부르고 있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자신은 그에게,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존재였다. 신뢰는 받았을지언정,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었을지언정, 자신은 그에게 있어서 사랑이 아니었다. 그가 사랑하는 존재가 될 수 없었다.
그 날만큼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바닥에 앉아 침대 위에 있는 그의 곁을 지키며 그가 잠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 어느새 잠들었고, 다시 깨어났을 땐 이미 그는 떠난 뒤였다. 그리고 자신은 바닥이 아닌,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그걸로 아주 조금 그와의 관계가 달라졌다. 아니,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날 이래로 그와 반강제적으로 몸을 섞는 것은 변함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가 어느 정도 자신을 배려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연인에게 하듯 사랑스러운 키스를 나누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의 애무가 나날이 다정해져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볼 일을 마친 후 바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곁에 좀 더 머물고 가는 날이 점차 많아지면서 그가 시나브로 변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그의 오래된 사랑을 지우지는 못하고 있더라도, 자신에게 조금씩 정을 주고 있다고 착각해버렸다.
이제는 반쯤 일상처럼 그와 몸을 섞은 뒤 살짝 선잠에 들었었다. 그러던 중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잠에서 깨어났었다. 침대 옆자리에는 그가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어딘가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 먹은 솜같이 무거운 몸을 간신히 움직여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찾았다. 베란다에서 그가 한 손엔 담배를, 다른 한 손엔 핸드폰을 든 채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키ㅅ...]
그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던 시도는, 그의 입에서 나온 말에 묻히고 말았다.
[어디 있냐고요? 아뇨, 잠시 밖에... 애인 집이냐고요? 하하,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런 거 아니에요. ...뭐, 그런 거죠.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사이. 속히 말하는 섹스 파트너라고 할까요. 관계 갖는 것 빼곤 딱히 바라는 것도 없어서 편해요. 임신도 안 하고.]
열어선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가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열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현실을 자각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조리 다 착각이었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깨닫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자신은 여러모로 편한 섹스 상대였다는 걸, 그의 입을 통해서 만큼은 절대로 확인받고 싶지 않았다.
세상이 무너질 것 같다는 기분이 바로 이런 느낌인걸까.
금방이라도 휘청거릴 것처럼 후들거리는 다리를 다잡았다. 똑바로 서 있으려고 부단히도 애를 썼다. 그리고 통화 내용을 듣게 되었다는 걸 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다시 침대로 돌아갔다. 침대에 누워, 애초에 일어난 적이 없는 것처럼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침대 쪽으로 걸어왔다.
[아직도 잠까? 평소보다 더 오래 자는 것 같네.]
그가 자신에게 말을 건네자, 그제야 다시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아, 깼슴까? 실은 나, 이제 곧 돌아가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
[그럼 다음에 또 올게요.]
다음을 기약하는 그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도 별로 신경을 쓰는 것 같지는 않았다. 별 다른 말을 꺼내지 않고, 자신에게 바로 등을 보이며 현관을 빠져나갔으니까. 자동적으로 현관문이 닫히자, 그제야 입을 열고 뒤늦은 대답을 했다.
다음은 없어, 라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가 집으로 찾아와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집에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것이 몇 번 반복되니 그는 집으로 찾아오는 횟수를 줄였다. 대신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회사 근처로 가끔 찾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발견하는 것보다, 자신이 먼저 그를 발견하곤 했기 때문에 다행히도 얼굴을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다. 회사 근처에서도 만날 수가 없자 차츰 그에게서 오는 문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 온 문자는 많이 바쁘냐는 내용이었다. 문자 확인은 했지만 답장은 보내지 않고 그대로 삭제해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자의 내용은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답지 않게 걱정을 하는 것 같은 늬앙스로 바뀌었다. 이 또한 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이런 문자를 보낸 건 또 처음이라, 기념할 겸 메시지 함에 보관해두었다. 다음으로 또 한 번 내용이 바뀌었다. 혹시 자기를 피하고 있는 거냐고. 이번엔 문자와 더불어 전화를 걸어오는 횟수도 늘어났다. 문자 확인은 주기적으로 할지언정 전화는 받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 그가 다시 문자를 보냈다. 보고 싶다고, 만나고 싶다고. 그래서 이번만큼은 그에게 답장을 보냈다.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의 위치를 짤막하게 적어서, 주변 풍경을 찍은 사진까지 첨부해서.
문자를 보낸 뒤, 자신은 줄곧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탁 트인 하늘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까마득하게만 보이는 지상을 내려다보면서.
끼익, 하고 철문이 열리는 소음이 들렸다. 반사적으로 철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그가 서 있었다. 늘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던 머리카락이 한껏 흐트러져있었다. 깨끗한 피부 위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마치 먼 거리를 달려오기라도 한 것처럼.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작게 키득거렸다. 그가 서 있는 곳과 자신이 서 있는 곳은 거리가 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코앞에서 본 것 마냥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아서였다. 그러다 바로 웃음을 거두어들였다. 자신이 보았다고 생각한 그 모습 또한 착각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선배...?”
“오랜만이다, 키세.”
오랜만이라고 살갑게 이야기를 하는데도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듯이, 조심스럽게, 천천히 이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왜, 그런 곳에 서 있는 검까...?”
“이곳이 뭐가 어때서.”
“거긴...”
옥상 난간 바깥쪽이잖슴까, 하는 그의 말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그래서 좋은 건데. 아슬아슬, 위태위태. 마치 외줄타기 하는 것처럼.”
게다가 하늘도 땅도 잘 보이는 곳인걸.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금 그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탁 트인 하늘, 그리고 그 아래 덩그러니 서 있는 그의 모습. 그것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꽤나 멋진 풍경이었기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웃고만 있는 자신의 작태에 그는 불안감을 느꼈는지, 다시 한 번 초조한 목소리로 자신을 불렀다.
“이쪽으로 와요. 거긴 위험함다.”
“그래?”
“네. 그러니까...”
“미안하지만, 난 그쪽이 싫은데.”
자신에게 손을 뻗으며 천천히 걸어오던 그가,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섰다.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어들이곤, 다시 옥상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을 가만히 응시했다.
“키세, 난 말이지, 옥상을 좋아해. 정확히 말하자면 옥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
“여기까지만 올라와도 시계가 달라지거든. 땅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여. 게다가 하늘도 보다 가까운 곳에서 올려다볼 수 있어.”
“...”
“근데 꽤 옛날에 문득 깨달았다? 난간 안쪽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 또한 지상에 얽매여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걸 말이야.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 좁은 곳에 갇힌 채로 드넓은 하늘을 동경하는 것과 같다는 걸. 원하고 원하는 것을 눈앞에 두고 있어도 가질 수 없는 것과 같아.”
같은 거다, 키세, 라고 낮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덧붙이며 그에게 한 번 시선을 던졌다. 그의 두 눈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선배, 난... 그...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슴다.”
“응, 모를 거다. 물론 몰라도 상관없는 일이지. 그러니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돼.”
“...”
“옥상에 있는 난간이라는 건 내게 있어서 일종의 벽이었어. 굴레이자 족쇄이기도 했지.”
그래서 벗어나고자 하는 거야.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그를 바라보면서, 이렇게까지 관계가 비틀리기 전에 짓곤 했던 순수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미안하다, 키세. 네 앞에서 이런 짓을 하는 건 내 이기심일지도 몰라. 아니, 내 이기심이야.”
“...선배?”
“너를 위해서라도 네 눈앞에서 조용히 사라져 주고 싶었어. 하지만 나를 위해서 내 존재가 네 기억 속에 남아있었으면 했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내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죠? 그렇죠?”
“내 충동을 억누르고 있던 마지막 굴레는 너였다, 키세. 비록 스스로 끊어내기로 마음먹었지만 말이야.”
“선배!!!”
땅을 등지고,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몸을 뉘였다. 난간에 반쯤 몸을 걸치고, 자신을 향해 손을 뻗으면서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비록 그 얼굴은 점점 멀어지고, 흐릿해졌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의 금발은 마치 태양빛과도 같아서 푸른 하늘과 유독 잘 어울렸으니까. 그 두 가지가 한데 어우러진 풍경을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간의 아픔을 모두 상쇄시킬 정도로 행복했다.
그러다 그의 얼굴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즈음에야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읊조리듯이 한 가지 소원을 빌었다.
[부디 다음에는 나비로 태어날 수 있길. 덧없는 생명일지언정 바람이 가는 대로 자유로이 따라 날갯짓을 할 수 있게. 그 날개가 거칠어진 바람에 찢어지기 쉬울지라도, 그래도 바람 하나만 바라보고 따라 날아다닐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