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립] 작은 꽃 한 송이 AU.나루토
"여기서 혼자 뭐 하고 있어?"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잠시 마을에 나왔다가, 한 공터 근처를 지나게 되었다. 공터에는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으나, 살짝 시선을 돌려보니 한 아이가 공터 구석진 곳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아무리 봐도 모르는 아이였기에 그냥 지나칠까 싶었지만, 자신보다 두어 살 어려보이는 그 아이의 등이 왠지 모르게 외로워 보여서 무의식적으로 그 아이에게로 다가가 말을 걸게 되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자신의 인기척이 느껴질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옆을 한 번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답 한 마디 꺼내지 않았다. 말 그대로 무시로 일관한 채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렇게 무시를 당하는 건 익숙하지 않았을 뿐더러, 그리 기분 좋은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일순 '그냥 갈까' 하고 생각을 했지만 몸은 다시 멋대로 움직여 그 아이의 옆에 같이 쪼그리고 앉게 되었다.
"뭘 보고 있어?"
"..."
"어, 꽃이네?"
아이가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척박한 공터 위에 핀 작은 꽃 한 송이었다. 크고 화려한 다른 꽃들과는 달리 소박하기 짝이 없었지만, 꽃을 구성하고 있는 작은 꽃잎들은 안쪽은 부드러운 노란빛이었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선명한 푸른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어 아기자기하게 예쁘다는 느낌이었다.
"예쁘네. 이 꽃, 좋아해?"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가 아이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일순 숨을 잠시 들이켰다. 순간적으로 여자아이로 착각한 탓이었다. 물끄러미 꽃을 내려다보고 있는 두 눈가엔 빽빽하고 섬세하게 자란 긴 속눈썹이 자리 잡고 있었고, 오똑한 코며 도톰한 입술 모두 예쁜 여자아이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여자아이가 아니라는 걸 바로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아이가 본래 지니고 있던 분위기 탓일지도 몰랐다. 자신 또래의 어린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고, 또한 어두운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꽃을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에야 비로소, 아이는 꽃에서 시선을 떼고 자신을 돌아보았다. 다시 한 번 예쁜 눈이구나 하고 생각할 무렵, 아이는 자신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 꽃을 돌아보더니 팍 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무릎 위에 가지런히 얹어 두었던 손을 뻗어, 가련할 정도로 위태위태하게 자라고 있던 들꽃을 거칠게 꺾어버렸다.
"안 좋아해, 이런 꽃."
"..."
"자기가 피어날 장소도 제대로 모르고 피어난 꽃 따위. 어차피 금방 죽어버릴 거잖아."
"..."
"죽어버리면 그만인 거야. 무가치 해."
아이의 목소리에는 분노와도 같은 감정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어렴풋이 슬픈 기색도 묻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강도로 따지자면 분노가 좀 더 강한 것 같았지만, 은연중에 드러난 슬픔이 왠지 자신의 가슴을 울리고 있었기에 이대로 아이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심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의 손목을 잡고 무작정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이게 언제 적 일이더라."
눈꺼풀 위에 드리우는 아침 햇살에 잠에서 깨어나, 건조해진 눈을 손등으로 가볍게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벌써 20년 가까이 된 일인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하품을 한 번 크게 한 후, 비척비척 몸을 일으켜서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일상의 당연한 수순대로, 세안과 샤워를 한 뒤 옷을 갈아입고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마쳤다. 먹은 것 뒷정리까지 끝낸 후에야 아카데미에 출근할 준비를 마치곤 밖으로 나와 현관문을 잠갔다.
"아아, 공기 좋다."
아카데미의 선생 일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임무에 나간 사람들보다는 늦게, 그리고 일반적인 업무를 보는 사람들보다는 늘 이른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약간은 서늘하지만 상쾌하게만 느껴지는 아침 공기를 기분 좋게 들이마시면서, 여느 때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아카데미로 향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 카사마츠 선생님. 좋은 아침이에요."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반쯤은 버릇이 되어버린 아침인사를 건네자, 자신보다 먼저 와 있던 선생이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그 선생은 자신이 앉는 자리 맞은편에 앉아 있었는데, 그 자리는 어제까지만 해도 비어있었다.
"임무에서 돌아오셨군요. 이번에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하, 수고는요, 뭘. 교류하고 있는 마을들에 전령으로 다녀온 것뿐인 걸요."
"급의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임무는 임무잖습니까. 마을을 위한 일이기도 하고."
덤덤한 어조로 그의 공로를 치하하자, 선생은 조금은 쑥스러워 하는 기색을 표하더니 '그런가요?'하고 짧게 덧붙이면서 대화를 마쳤다. 아침 인사는 자신도 이정도로만 하면 될 것 같아서, 그 이상 말을 꺼내지 않은 채 짐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는데 책상 위에 못 보던 것이 있어서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꽃?"
꽃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많이 부족할지도 모르는 작은 들꽃 한 송이였다. 하지만 왜 꽃 한 송이가 여기 놓여있는가 보단 누가 이걸 두고 갔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에, 자신보다 먼저 와 있던 선생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혹시 제가 오기 전에 누가 절 찾아왔습니까?"
"네? 적어도 제가 온 후에는 없었는데요."
"그럼 누구지..."
들꽃을 내려다보며 고민을 하고 있자, 선생은 작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카사마츠 선생님이 담당하고 있는 반 아이들이 아닐까요?' 라고 덧붙였다. 그 말에 생각나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가능성을 가늠해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수업에 성실한 코보리였으나, 자신에게 꽃을 줄 이유는 없었다. 그 다음은 모리야마였는데, 간간히 꺾은 꽃을 남들에게 뿌리고 다니긴 했으나 그 대상은 여자 한정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둘의 이름을 머릿속 리스트에서 지우고, 이어 하야카와와 나카무라의 이름도 리스트에서 소거했다.
"대체 누가....아."
리스트 내의 학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소거시켜나가며 고민하고 있던 도중, 오늘 아침 일어나기 전 꾸었던 꿈이 떠올랐다.
"...설마."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다. 꽃과 연관된 자신의 추억은 그 때의 일, 단 한 가지뿐이었지만 그 때의 그 아이가 지금 와서 자신에게 꽃을 줄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아침에도 떠올렸다시피 벌써 근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바람에 흩날리던 꽃이 열린 창문을 통해 날아 들어와 자신의 자리에 떨어졌다, 정도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려버리자 곧 꽃에 대한 것은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아이들을 가르칠 수업 준비와, 아카데미를 졸업해 닌자 시험을 칠 아이들의 목록을 추리는 것으로 머리가 가득 차버리고 말았다. 간간히 교실로 수업을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다가 호카게가 자신을 부른다는 말을 전달 받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선생들에게 잠시 호카게를 뵙고 오겠단 말을 남기고는 아카데미를 빠져나왔다.
아카데미 안에 있을 때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감을 제대로 못 잡고 있었는데, 밖에 나와 하늘을 바라보니 시간이 꽤 흘러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서쪽 하늘이 불그스름하게 물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카게 님을 뵙고 나오면 퇴근 시간이겠는걸."
그렇게 생각하니 좀 더 느긋하게 다녀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곧, 임무 수행과 함께 시간 엄수도 목숨같이 여겨야 하는 닌자가, 그것도 그런 닌자를 육성하는 선생이 가질 마음가짐이 못 된다고 스스로를 질책하고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시라도 바삐 다녀오려고 발을 움직이고 있는데, 눈앞에 나풀나풀 꽃 한 송이가 떨어졌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시야를 가리는 꽃을 가볍게 낚아챘다. 그러자 더 많은 꽃이, 마치 계절을 잊은 눈이 내리는 것처럼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건?"
일순 눈같이 흩날리는 꽃이 예쁘다고 생각을 했지만, 이내 누군가가 자신에게 환술을 거는 것인가 싶어서 눈빛을 달리하며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환술을 해제할 인을 맺으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누군가에 의해 손목을 붙잡혔다. 그러나 자신의 손목을 붙잡은 그 손길은 조심스럽고 부드럽기 짝이 없어서, 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자신의 손목을 붙잡은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자신은 만난 적이 없는 모르는 사람 같았다. 단지 현 시점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입고 있는 것과는 다른 '암부'의 복장을 상대가 입고 있었다는 점과, 신상이 드러나지 않도록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는 암부 특유의 흰색 여우가면 너머의 얼굴이 왠지 웃고 있는 것 같단 느낌이 든다는 점이었다.
"암부가 제게 무슨 볼일이라도."
"예전과는 다른데요? 예전엔 좀 더 상냥했는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하지만 그런 모습도 나쁘진 않네요, 라고 암부는 영문을 모를 말을 하면서 작게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같은 나뭇잎 마을의 닌자라고는 하나 아카데미에서 아이들을 육성하는 자신과, 호카게 직속 암살 부대에 속해 있는 상대와는 접점이 없었다. 그런 상대가 마치 자신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기분이 껄끄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욱 무뚝뚝한 어조로 상대에게 대꾸했다.
"볼일이 없으시다면 먼저 가보겠습니다. 호카게 님의 명을 받고 가는 중이기에."
"'죽어버리면 그만인 거야. 무가치 해.'"
"...!"
이전에 공터에서 만났던 아이가 꺼낸 말이었다. 다른 누구에게도, 심지어 부모님에게도 이야기 한 적이 없었기에, 자신을 제외하곤 그 아이만이 알고 있는 말이었다. 그 말을 어떻게 눈앞에 있는 암부가 알고 있는 것일까.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여우 가면을 쓰고 있는 암부의 얼굴을 응시했다.
"어떻게 그 말을..."
"제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당신이 이렇게 대답을 돌려줬었죠. 꽃이 가득 핀 곳으로 데려가서, 화관을 만들어 주면서."
"..."
"'네가 보기엔, 네 손으로 그렇게 꺾어버린 작은 들꽃이 무가치해 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하지만, 이렇게 다른 꽃들과 엮어 화관을 만든다면, 어느 누군가를 미소 짓게 해줄 수 있는 가치정돈 갖게 되지 않을까?"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오늘 아침에 꾸었던 꿈의 연장을 보는 것처럼 천천히 읊조리듯이 말을 이었다. 그렇게 말을 꺼내고 나서 스스로가 놀라서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자, 앞에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던 암부는 손을 들어 올려 본인의 가면을 벗어 내렸다.
그때처럼 예쁜 여자아이 같은 느낌은 많이 사라져 있었지만, 그래도 남자이면서도 예쁘장하다고 느낄 정도의 잘생긴 외모가 가면 너머로 서서히 드러났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그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이렇게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는 것은 여러모로 예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곤 얼른 시선을 돌렸다.
"미안합니다, 암부 신상은 극비인데.."
"아, 괜찮슴다. 어차피 이제 자주 볼 텐데요."
"자주요?"
그런 게 있슴다, 하고 상대는 싱긋 눈웃음을 짓더니 검지를 입술에 살짝 대고는 이 이상은 비밀이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리고 그는 양 입 꼬리를 부드럽게 끌어올려 웃더니 다시 입술을 열었다.
"제 이름, 키세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카사마츠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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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프롤로그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