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먹] 리퀘
아침운동 나가는 아카시와 아침 식사 차려주는 마유즈미
자신의 기상시간이 이른 편이라는 것은 아카시 세이쥬로,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상 시간은 전 날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쪽에 가까웠다. 전 날에 아무리 늦게 잠들었어도, 전 날에 아무리 고단한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일어나는 시간은 거의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이번에 맞이하게 된 아침에도 마찬가지였다.
아카시는 자신의 옆자리에 누워 있는 사람을 응시했다. 어슴푸레한 아침 햇살이 드리우고 있는 그의 실루엣은 여느 때보다 존재감이 흐릿한 것 같았다. 마치 창문 틈새로 흘러들어오는 아침 햇살에 녹아버릴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점점 강해질 태양빛에, 이슬과 마찬가지로 눈 깜빡할 새에 증발하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물론 사람이니까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카시는 입술 사이로 피식, 바람 빠지는 것 같은 웃음을 짧게 흘렸다. 아직 해가 미처 다 떠오르지 못한, 새벽에 가까운 아침에는 유독 감성적인 기분이 되곤 했다. 그와 몸을 섞은 다음 날에는 특히 더 그랬다. 그가 가지고 있는, 건조한 것 같으면서도 풍부한 감수성이, 몸을 섞을 때 자신에게 흘러들어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문득 그런 생각을 하다가, 아카시는 다시 한 번 작게 목을 울리며 웃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럴 리가 없었다. 그건 과학적인 근거를 댈 수 없는 망상에 가까운 생각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심코 그런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자신은 그에게 빠져있었다. 아카시 세이쥬로는 그, 마유즈미 치히로라는 존재에게 사로잡혀 있었다.
그 탓에 매번 무리하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네.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이야기를 하면서,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두 눈을 꼭 감고 잠들어 있는 그의 뺨 위에 아주 살짝, 닿을 듯 말듯하게 손을 얹었다. 손바닥에서부터 희미한 온기가 전해지기 시작했다. 평소에 접하는 체온보다는 약간 높은 듯 했다. 아마 밤늦게까지, 아니 새벽까지 자신이 그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은 탓일지도 몰랐다. 그는 무리를 하면 몸 어딘가에 변화가 생기곤 했으니까.
그의 뺨에 얹었던 손을 거두어 들였다. 그리고 물끄러미 그의 자는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잠깐 생각에 잠겼다. 한 번 눈을 뜬 이상 밤이 되기 전까진 잠이 오질 않으니 억지로 더 잘 수도 없었다. 몸에 익어버린 생활패턴은 이제 바꾸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러니 그가 잠에서 깨어나는 걸 기다릴 겸 가벼운 시간 때우기로 아침 운동을 하고 와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생각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 와중에도 행여나 자신 때문에 그가 잠에서 깨지는 않을까, 아카시는 조심스럽게 움직여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욕실로 향해 가볍게 세안을 한 뒤, 장롱에서 트레이닝복을 꺼내어 갈아입었다. 나갈 준비를 마친 뒤 바로 현관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다가 잠시 제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 다시 침실 쪽으로 들어가, 곤히 잠들어 있는 그에게로 다가갔다.
“마유즈미 상.”
그를 불렀으나 반응이 돌아오지 않았다.
“치히로.”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으나,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미동조차 없었다.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작게 웃으면서, 허리를 숙여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운동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의 이마에 살짝 입술을 맞춘 뒤 자세를 바로 했다. 미련 없이 발걸음을 현관 쪽으로 돌리곤 아침 운동을 위해 밖으로 나섰다.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얼굴에 와 닿는 공기는 약간 서늘하다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정도가 운동을 하기엔 최적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손목과 발목을 가볍게 풀며 달릴 준비를 했다. 잠을 자면서 굳은 근육과 관절이 어느 정도 풀리자, 보폭을 크게 하며 걷다가 서서히 속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페이스 조절을 하면서 인근 거리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평소 하던 게 있었기 때문에 숨이 차오른다던가, 심장이 급격하게 뛴다던가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달리면서 체온이 조금 오른 것인지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숨결이 뜨거웠다. 그리고 서늘하다고 느꼈던 공기 또한 더 이상 서늘한 걸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이 정도면 되었을까.
페이스를 늦추며 천천히 보폭을 줄여나갔다. 그리고 정리 운동을 하는 것처럼, 천천히 걸어 집 앞으로 되돌아왔다. 현관문을 열면서 문득 스스로의 모습을 확인하는데,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이마며 몸에 살짝 땀에 배어나와 있는 걸 깨닫게 되었다.
샤워부터 해야겠는걸.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가볍게 훔쳐내면서 생각했다. 그리고 운동화를 벗은 뒤 현관에 올라섰다. 발걸음을 집 안에 내딛자마자 바로 욕실로 향하려는데, 뭔가 고소한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
향기의 근원지는 부엌이었다. 마치 자석에 이끌리는 것처럼, 욕실로 향하려던 발걸음을 돌려 부엌으로 걸어갔다. 부엌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갓 구운 것으로 보이는 토스트 두어 장과 우유 한 컵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아무 말 없이 테이블 위에 차려진 것을 응시하고 있다가 싱크대 쪽으로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왠지 모르게 어수선한 모양새였다. 어제 말끔하게 치웠음에도 불구하고.
“하하.”
테이블 위의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아카시는 바로 침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침실 문을 열어젖히니, 아직 침대 위에 누워서 곤히 자고 있는 그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니, 자고 있는 척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언제까지 자고 있는 척 할 거예요?”
자신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말이 안 통하면 행동하는 수밖엔 없겠군요.”
아카시는 그렇게 이야기를 한 뒤 곧장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두 눈을 꼭 감고 있는 그에게로 다가가, 허리를 숙여 입을 맞췄다. 시작은 가벼운 버드키스였지만, 그가 눈을 뜰 것 같지 않자 집요하게 혀로 그의 입술을 핥아 올리고 치아로 가볍게 입술을 자극했다. 자극에 반응해 반사적으로 입술이 벌어지자 그 틈을 파고들어갔다. 숨이 모자랄 정도로 진득하게 입을 맞추고 있자, 그가 눈을 뜨더니 그만하라는 듯이 손바닥으로 자신의 어깨를 밀어댔다.
“지독한 놈 같으니.”
“그러니까 자는 척 그만하랄 때 그만하는 게 좋았잖아요.”
“타이밍을 놓친 걸 어떡하라고. 게다가 이런 식으로 강제로 일어나게 만들 줄 내가 알았겠냐?”
불퉁거리는 어조로 이야기를 하는 그를 바라보면서, 아카시는 도리어 그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왜 모릅니까?”
“뭐?”
“잠자는 공주님을 깨울 수 있는 건 왕자의 키스뿐이잖아요.”
“...”
“그러니까 키스로 깨우는 게 당연하죠.”
공주님 치곤 꽤 큰 키의 소유자지만 말이에요, 하고 덧붙이면서 아카시는 쿡쿡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자신을 이상한 놈을 바라보는 것 같은 시선으로 응시하는 그에게 살며시 손을 뻗었다. 다시금 그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이어 말했다.
“아침식사 준비해줘서 고마워요.”
“...흥.”
“땀 냄새 날지도 모르니까 샤워하고 나와서 먹을게요.”
“그러던지.”
“더 잘 생각 아니면 같이 샤워 할래요?”
“거절한다.”
같이 들어가면 어제의 연장전이 될 것 같으니까, 하고 그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게 어렴풋이 귓가에 닿았다. 그 이야기에 작게 웃으면서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곤, 먼저 씻고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욕실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