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이츠] 조각글
뭔가 메이이츠로 새드 분위기 나는 걸 써보고 싶었는데 그 끝은 개그...
앵슷이나 그런 건 나에게 무리.
게다가 막판엔 쓰기 귀찮아져서 그냥 쓰고 싶었던 대사만...
누가 보아도 병색이 완연한 얼굴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도, 그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또한 그 누가 보아도 볼품없이 여위어 있는 몸을 가지고 있는 자신을 보고도, 그는 그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만을 기다린다는 듯이, 입을 굳게 다물고 이쪽을 직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일순 그의 눈동자가 짙게 가라앉았다. 아니, 한순간의 착각일지도 몰랐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그의 눈동자는, 싱그러운 여름 하늘이 떠오르는 푸른빛이었다. 그리고 그늘 한 점, 얼룩 한 점이라고는 없는 말갛기 짝이 없는 눈이었다. 좌절을 할지언정, 길을 헤맬지언정, 다시 한 번 일어나 앞을 직시할 수 있는 강인한 빛을 가지고 있는 눈이었다. 그러니 그런 그의 눈빛이 어둡게 침잠되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착각일 것이다.
“메이 선배.”
여전히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물론 자신 또한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나루미야 선배.”
방금 전에 부른 것과는 약간 달라진 호칭에, 그에게서 작은 반응이 흘러나왔다. 기껏해야 어깨를 가볍게 움찔거린 정도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는 듯이 자신은 미소를 지었다.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그에게도 이 미소는, 이 웃고 있는 표정은 충분히 보일 터였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인상을 찌푸릴 리가 없을 테니까.
자신이 지은 미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그를 바라보면서 잠시 생각했다. 혹시 그를 비웃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어디 아픈 것 같은데 머리까지 안 좋은 건가, 하고 생각하는 걸까.
어느 쪽이어도 상관없었다. 오늘 그를 만나러 나온 것은, 그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함이 아니었으니까. 그의 눈치를 살피기 위함이 아니었으니까. 어디까지나 이번 만남은, 그와의 관계를 그만두기 위한 것이었다.
그를 옭아매고 있는 ‘연애’라는 관계를 끊어내자, 그렇게 다짐했다.
“늘 생각했습니다. 나루미야 선배는 제게 과분한 사람이라고 말이죠.”
“…이츠키.”
“타다노, 겠죠.”
호칭을 정정해주었더니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다시금 실소가 흘러나왔다. 이것으로 조금이나마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알아차려 주었으면 좋겠는데. 원래 눈치가 없는 사람도 아니었으니 이 정도로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이별의 말을 꺼내지 않는 그의 고집이 우스웠다. 그리고 그냥 헤어지자고만 하면 될 걸 꾸역꾸역 변명과도 같은 사족을 덧붙이려고 하는 스스로가 우스웠다. 그래서 실소를 흘렸다.
“선배는 지금도 빛나고 있지만, 고교 시절 때에는 제 우상이었습니다.”
“…이츠키.”
“당시 선배와 보낸 여름은 정말,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이츠키.”
“더워서 숨이 막힐 것 같아도, 하늘을 올려다보면 눈에 들어오는 푸른 빛깔이 참 시원했거든요.”
“내 말 좀 들어봐, 이츠키.”
“그 하늘을 보고 있으면 속이 시원해지기도 하고, 또 선배 생각이 나서 힘든 것도 잊게 되더라고요.”
제게 있어서 여름 하늘의 빛깔은, 선배의 눈동자 색이에요. 그건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거예요.
나지막이 덧붙인 말에, 망가진 레코드처럼 자신의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던 그의 입술이 멈추었다. 그도 입을 다물고 자신도 입을 다물자 어느새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러한 침묵의 시간조차 행복했던 때가 있었노라고 무심코 생각하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아했습니다, 나루미야 선배.”
좋아했다는 과거형의 말 한 마디로 그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이 말을 꺼낸 것에 대한 사죄라도 하려는 것처럼, 혹은 연인이 아닌 선배에게 예를 표하는 것처럼 깊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실은 이 인사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그의 시선에서 도망친 것뿐이었다. 그의 시선을 마주하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꺼낸 이별의 말에, 그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확인하는 것조차 무서웠다. 그래서 사과와 예를 표하는 인사를 빌미삼아 회피했다. 또한 무심결에 튀어나올 뻔한 ‘아직도 좋아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속으로 삼켜버렸다. 결국 이건 그의 반응을 피하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감정에서조차 도망치는 행위였다.
헤어짐을 고하는 자신의 말을 들은 이래로 그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아직 이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일까. 허리를 숙인 상태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슬슬 허리 쪽이 뻐근하게 아파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딱 한 번, 그의 얼굴을 보고 떠나자고 다짐하면서 숙인 허리를 곧추세웠다.
“여름이 오면 어떻게 할 거야?”
“…네?”
영문을 알 수 없는 물음이었다. 게다가 허리를 세워 그를 마주한 순간 불시에 치고 들어온 질문이었기에, 다소 어벙하게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꽤나 진지한 얼굴과 목소리로 그 질문을 반복했다.
“그러니까, 여름이 오면 어떻게 할 거냐고.”
“어떻게 하냐고 물으셔도….”
“온 하늘이 내 색으로 물들어 있을 텐데, 내 생각 안 날 것 같아?”
“…….”
당당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오만하다고 해야 할지. 의문형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말이었지만, 그 말은 어디까지나 ‘생각 안 날 리가 있나.’ 하는 확신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리고 웃긴 것은, 자신은 그 말을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시기가 겨울인 걸 다행으로 여겨, 이츠키.”
“의미를 모르겠는데요.”
“이대로 헤어졌으면 넌 계절이 바뀌는 절반을 힘들어 했을 테니까.”
“…….”
“여름에는 내 눈 색을 닮은 하늘 때문에 힘들어 했을 테고, 겨울엔 나를 차 버린 기억에 힘들어 했겠지.”
“차버리다니….”
차는 게 아니라 헤어진 거라고 정정을 하려 해도, 양 눈에 힘을 주면서 노려보는 통에 시도도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마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자신이 조금이나마 위계질서에 눌리는 모습을 보이자,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 콧방귀를 한 번 내뀌곤 다시 말을 이었다.
“차라리 이 같잖은 시도를 여름에 했으면 여름만 싫어지는 걸로 끝났을 텐데. 그렇지?”
자신이 여름을 싫어할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괜히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네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자리를 만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난 너랑 헤어질 생각 추호도 없으니까.”
“그래도 제가 헤어지고 싶다고 하면요?”
“나에게 그런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여름을 싫어해보던가.”
네 순수한 열정을 불태웠던 여름을, 나와 함께 그라운드 위에 올랐던 여름을, 그 위에서 땀과 눈물을 흘렸던 여름을, 그리고 내 눈 색을 닮은 하늘이 펼쳐져 있는 그 여름을.
그의 올곧은 시선이 자신에게 그렇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 여름이, 그 추억이 싫어질 때에나 이별을 고하라고. 싫어질 리가 없는데도. 싫어할 리가 없는 걸 알고 있는데도. 자신과 그, 둘 다 대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
“이츠키, 넌 쓸데없이 생각이 많아.”
“쓸데없는 건 아니죠.”
“아니, 쓸데없어.”
“…….”
“이렇게 보면 넌 나랑 참 많이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이래서 연인은 닮아간다 하나?”
“어디가요.”
“애 같은 점!”
“제 어디가요?!”
“뭐, 방향성이 좀 다르긴 하지만.”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닮은 점이네요.”
“난 애 같지만 어른이고, 넌 어른 같지만 애라는 점이 비슷하지 않아?”
“그게 비슷한 거예요?”
“당연하지! 둘 다 어른이자 애니까!”
“납득 못 하겠네요.”
“흥! 여하튼 아무래도 좋아.”
“…….”
“근데 그 얼굴이랑 그 몸은 뭐야? 어디 많이 아파?”
“아, 이거요. 헤어지자고 말하자고 결심했더니 그것 때문에 좀….”
“하여간 쓸데없는 생각 참 많이 해.”
“죄송하게 됐네요.”
“빨리 회복하기나 해. 앞으로 우린 해야 할 거 많으니까. 내가 같이 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네, 그렇게 할게요.”
“그래야지.”
“메이 선배.”
“왜 불러, 이츠키?”
“저, 앞으로도 여름이 싫어질 일은 없을 것 같아요.”
“당연한 말을 새삼스럽게 하네.”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이츠키 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