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

[라쿠잔] 쿠로코의 농구 전력 60분 키워드 : 새해

입존불가_시그너스 2015. 1. 2. 21:55

쿠로코의 농구 전력 60분 키워드 : 새해


새로운 한 해를 앞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 다른 감흥이 일지 않았다. 그저 이전과 마찬가지로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 정도의 감각에 가까웠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분주하게 나갈 준비를 마치고 신사로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텔레비전 방송에서 팀을 나누어 아이돌들이 춤추고 노래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어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는 건 추워서 싫은걸. 게다가 저런 것에 흥미도 없고”


집 구조의 특성 상 내부의 공기는 차갑기 짝이 없었기 때문에, 어깨 위에 걸친 옷을 조금 더 여미면서 꾸물꾸물 코타츠 안으로 기어들어가듯이 자리를 잡았다. 훈훈한 온기가 가득 차 있는 코타츠 안에 몸의 대부분을 밀어 넣고 있으니, 그제야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연휴에는 쉬는 게 제일이지.”


나른한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리고 있다가, 아직까지도 시끄럽게 혼자 떠들고 있는 텔레비전 쪽으로 잠시 시선을 돌렸다. 더 이상 텔레비전엔 흥미가 없었다. 코타츠 안에 기어들어가 있는 상태로 손만 쭉 뻗어서 더듬더듬 텔레비전의 리모콘을 찾았다. 손끝에 리모콘이 걸리자 그걸 슬슬 끌어 손에 쥐고는 텔레비전 전원버튼을 눌러 껐다.


핏, 하는 소리와 함께 텔레비전 전원이 꺼지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던 소리 또한 함께 사라져버려서, 일순간에 방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새해랍시고 소란스러운 방송 분위기가 내심 마음에 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소음이 사라지자 조금은 어색하다 싶을 정도로 방 안에 적막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적막감도 곧 푹 쉴 수 있는 ‘고요함’ 정도로 받아들이게 되어서,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을 한 채로 코타츠 탁자 위에 엎어 놓았던 책을 다시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다. 주변이 조용하니 여느 때보다 흰색 종이 위에 나열되어 있는 글자들이 더욱 눈에 잘 들어오는 것 같았다.


얼마나 책에 집중을 하고 있었을까. 한 자세로 책을 읽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어깨와 목 근육이 결려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잠시 쉬었다 읽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잠시 물이나 한 잔 떠올 겸, 미적미적 코타츠에서 빠져 나와 방문을 열어젖히고 밖으로 나왔다.


“아, 추워.”


난방을 켠다고 해도 이 모양이네. 작게 투덜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내뱉고는 계단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가족들은 새해를 밖에서 맞을 모양인지 거실은 사람의 인기척 하나 없이 썰렁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휑한 분위기에도 별 다른 생각이 없었던지라, 바로 부엌으로 향해 머그컵 하나를 꺼내들었다.


방에서 나오기 전 생각했던 것처럼 물이나 한 잔 따라서 가지고 돌아갈까, 하고 잠시 생각을 하다가 역시 찬 물보다는 따뜻한 커피가 낫겠지 싶어서 귀찮음을 감수하고 커피를 내리기로 마음먹었다. 찬장에서 미리 조금 갈아두었던 원두 가루가 담긴 통을 꺼내어, 커피포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이거, 미리 갈아두면 향이랑 맛이 변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손을 움직여 커피를 내리고 있는 와중, 원두를 선물해준 ‘후배’가 했던 말이 떠올라 다시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일단 맛보다는 따뜻한 무언가를 마시고 싶은 욕구가 더 강했기 때문에, 그리고 먹을 때 즉시 원두를 가는 귀찮은 과정을 매번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에 아무렴 어떠냐는 듯한 표정을 잠시 지어보였다.


그렇게 수어 분이 지나자 머그컵 하나는 충분히 채울 수 있을 정도의 커피가 포트 안에 내려져 있었다. 그걸 잠시 지켜보고 있다가 포트를 빼내어 들어 머그컵에 조심스럽게 따라 붓기 시작했다. 포트 안에서 머그컵 안으로, 온기를 머금고 있는 커피가 김을 폴폴 흩뿌리며 옮겨졌다.


“향 좋기만 하네, 뭐.”


후배가 이야기 했던 것과는 달리, 커피에 별 다른 취미가 없는 자신에게도 지금 내린 커피의 향은 좋기만 했다. 물론 입맛이 고급인 사람들은 또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잠깐 동안 생각을 하고는, 머그컵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부엌을 빠져 나왔다.


행여나 바닥에 커피를 쏟을 새라 조심조심 걸어올라 왔더니만, 2층에 위치한 자신의 방에 도착하기까지 수어 분이 걸린 것 같았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커피가 담긴 머그컵을 나르는, 그런 번거로운 일은 이제 끝났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코타츠 탁자 위에 컵을 내려놓고 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다시 컵에 손을 뻗어 커피를 마시려고 한 순간, 책 옆에 두었던 핸드폰이 웅웅대며 울리기 시작했다.


“귀찮게 누구야...”


평소엔 자신에게 연락을 하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고, 심지어 가족들조차도 서로 연락을 잘 주고받는 쪽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렇게 시끄럽게 울리는 핸드폰을 보게 된 건 또 새삼 오랜만이다 싶었다. 그래서 누가 이 한밤중에 자신에게 연락을 하는지 궁금함 반 짜증 반인 표정으로 핸드폰을 집어 들어 확인을 해보았다.


[마유즈미 상,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마유즈미 상, 새해 복!!!!!!! 많이 많이!!!!!!!]

[새해 복]


굳이 메시지 창을 켜지 않고 푸시에 뜬 내용만 보아도 누가 보낸 것인지 대강 알 수 있었다. 이 녀석들에게 새해 안부 인사를 받다니,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답장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 때문에 핸드폰을 멀찌감치 던져두려고 하는데, 그 순간 다시 한 번 핸드폰 알림이 울렸다.


[Happy New Year. 지난 한 해, 감사했습니다. 아카시 세이쥬로.]


딱딱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었다. 거기다가 마치 회사원이 직장 동료에게 보내듯, 본인의 이름까지 문자 마지막에 꼼꼼히 적어 보냈다.


“예의 차리는 척 하긴. 예전엔 선후배 관계가 다 뭐냐는 듯이 반말해대더니.”


입으로는 문자 내용을 가지고 열심히 불평을 해대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입꼬리는 슬그머니 위로 향하기 시작했다. 후배들에게 이렇게 문자를 받았던 적이 있었던가. 연하장은 둘째치고 이런 식의 문자를 받은 건 또 처음일지도 몰랐다.


“아, 모르겠다.”


정말 귀찮지만 답장은 해줘야겠지, 라고 희미하게 웃음기가 어린 얼굴로 문자 창을 켰다. 그리고 자신에게 새해 인사 문자를 보내준 네 명의 이름을 일괄 선택 하곤, 같은 내용을 적어 그들에게로 전송했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 문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