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오유시니오] 키워드 : 포커페이스

입존불가_시그너스 2015. 1. 24. 15:28

개인 훈련을 마치고 나오니 땀투성이가 되어서, 이 상태론 도저히 잠자기는 그른 것 같아 수건 하나와 속옷, 간편한 옷가지를 챙겨 들고 샤워실로 향했다. 체온보다 살짝 높은 온도의 물로 운동 후의 피로를 씻어내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느긋하게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그제야 살짝 노곤한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아, 이제야 좀 살겠구만.”


나지막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새로 가져온 속옷과 옷을 챙겨 입은 후,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가볍게 털어내며 샤워장을 빠져나와 복도를 가로질러 방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샤워장에서 자신이 머무는 방으로 이어지는 이 복도는 구조상 숙소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휴게 장소를 지나게 되는데, 평소에도 시끌벅적하긴 했지만 오늘은 유달리 시끄러운 것 같아서 미간을 찌푸리며 그쪽을 향해 흘깃 시선을 던졌다.


“그렇게 운동을 하고도 목소리 높일 힘이 남아있다니... 쓸데없이 혈기왕성하다니까.”


하기야 한창 뛰놀 나이인 중학생들이 모인 곳인데다가, 운동을 하는 애들이었으니 체력 자체는 동년배들에 비해 월등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소란스러워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점차 그 소란스러움의 강도가 거세어지자 이대로 가다간 자신의 방까지 그 소음이 흘러들어올 것만 같아서, 3학년으로서 한 마디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며 사람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어이, 너그들. 공공장소에서 그렇게 소란스럽게 굴면 민폐라고 부모님께 안 배웠...”

“유-시!!”


덤덤한 목소리로 훈계조의 말을 꺼내고 있는데,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서 살짝 놀란 눈으로 그 목소리가 들린 쪽을 돌아보았다. 자신의 이름을 부른 인물은 다름이 아니라, 현재는 잠시 파트너를 맺고 있는 걸 그만 둔 상태이지만, 아직까지도 팀메이트로 함께 묶이곤 하는 무카히 가쿠토였다.


“뭐꼬, 가쿠토.”

“너... 너, 쟤랑 룸메이트지! 쟤 좀 어떻게 해봐! 아, 짜증나! 히요시보다 더 짜증나!”

“쟤?”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할 생각도 없이 짜증난다는 말을 반복하며 발을 구르는 가쿠토의 행동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쟤’라고 지칭한 대상을 돌아보았다. 그곳엔 무표정인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상대를 비웃고 있는 것 같은 묘한 얼굴을 하고 있는 자신의 현재 룸메이트, 니오 마사하루가 서 있었다.


“...니오, 너 무슨 짓 했나?”


자신의 물음에, 아니, 아무 짓도 안했는데, 하고 대답을 하면서 그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거렸다. 그 태평한 태도가 가쿠토의 기분을 더욱 자극한 것인지, 가쿠토는 연신 짜증난다고 소리 높여 외치기 시작했고, 이어 자신에게로 다가와 멱살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안하긴 뭘 안 해! 카드놀이 했는데 사기 쳤다고! 심지어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음료수 돌리는 내기 걸었었는데 쟤 때문에 내 돈 다 털리게 생겼어!”

“...사기 친 걸 알았으면 니오에게 내라고 하면 되잖아.”


가쿠토가 그렇게 난리를 칠 정도라면 니오가 사기를 치긴 쳤구나 싶어서 간단하게 대꾸를 했다. 실제로 니오 마사하루라는 녀석은 사기를 치는 게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인물이기도 했기에. 하지만 이런 자신의 말에 그는 한 번 움찔하더니 서서히 작아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그..그렇지만... 증거가 없어... 하지만 진짜 사기 친 건 맞다고!”

“뭐야, 증거도 없으면서 그런 거냐...”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있다고! 여하튼 네 룸메이트 짜증나!”


파르르 떠는 가쿠토를 달래기는 힘들 것 같아서, 멱살이 잡힌 상태 그대로 다시 한 번 니오를 돌아보았다. 그는 이 사건의 주범임에도 불구하고, 이건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라는 듯이 유유자적한 태도로 가지고 놀던 카드 패를 만지며 간이 소파 위에 느긋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딘가 능글맞아 보이는 미소는 덤이라면 덤이었다.


어디로 보나 사건을 무마시킬 생각이 한 톨만큼도 없어보여서,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가쿠토에게 잡힌 멱살을 슬쩍 풀어내었다. 진심으로 틀어쥘 생각은 없었는지, 자신의 손길에 가쿠토도 쉽게 멱살을 잡은 손을 놓아주었다.


“하아, 결국 뒤처리 담당은 나냐.”

“뭐야, 유시. 네가 대신 돈 내기라도 하려고?”

“아니, 그건 아니지. 그럼 나만 생으로 돈 뜯기는 거니까.”


그럼 어떻게 할 건데, 라고 묻는 듯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가쿠토를 응시하고 있다가 발걸음을 니오 쪽으로 돌려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카드 패를 낚아채면서, 그의 귓가에 ‘너, 방에 돌아가서 보자.’ 라는 말을 남기곤 다시 가쿠토에게로 돌아왔다.


가쿠토에게로 돌아갈 즈음 키득거리던 그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남았지만 무시했다.


“니오 건은 없었던 걸로 하고, 나랑 포커 게임을 해서 진 쪽이 음료수 돌리기로 하자고.”


승부욕이 강한 가쿠토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할 리가 없었고, 그렇게 니오의 사기 사건을 무마하기 위한 카드 게임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나 가쿠토에게서 ‘이 자식! 마음을 닫았어!’ 라고 울분에 가득 찬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포커 게임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