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고] AU 썰 두번째

입존불가_시그너스 2015. 3. 17. 12:59

미도리마는 그 감정에 감화가 되었기에, 손을 뻗어서 그 돌탑을 살며시 건드렸음. 처음에는 손끝에 가볍게 닿는 정도였지만, 접촉을 통해서 감정이 더욱 많이, 빠르게 흘러들어오게 되자 이제는 손바닥을 사용해서 부드럽게 쓸어내릴 정도가 되었음. 접촉 면적이 넓어질수록 점점 더 많은 감정이 전해졌음. 그 감정과 동화가 되어가는 것인지, 미도리마의 마음에도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솟아나기 시작했음. 그리고 그리움과 더불어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음. 마치 인간처럼. 토지신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음. 신에게 있어서 희노애락이라는 것은 거의 무의미한 것이나 다름 없었기에. 그저 자신만의 기준으로 벌을 내릴지 아니면 상을 내릴지 결정하는 것뿐이었음. 미도리마도 역시 그런 삶을 살아왔음. 그래서 지금 이 감정이 당혹스러우면서도 점점 더 짙게 물들어갔음. 누구를 그리워하기에 이렇게도 애틋한 감정을 품고 있느냐. 누구를 위해 이 돌탑을 쌓으며 기다림을 지속하고 있었던 것이냐. 누군지 모를 돌탑의 주인을 향해 속으로 말을 건네면서 미도리마는 연신 돌탑을 쓰다듬듯이 만졌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돌이 품고 있전 한 가지 기억을 읽어냈음. 돌탑을 만든 인간의 모습이 담겨 있는 기억을. 미도리마는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어 그 인간의 이름을 불렀음. [타카오?]


사당 옆에 돌탑을 만든 것은 타카오였음. 돌탑을 만져서 감정을 읽어냈을 때와 마찬가지로, 타카오는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돌탑을 만들기 시작했었음. 하지만 탑이 점점 높아지고, 사용하는 돌이 많아질수록 그리움 또한 쌓이기 시작한 것 같았음. [어째서 네가...] 미도리마는 돌의 기억속에 자리잡은 타카오에게 말을 건네듯이 중얼거렸음. 타카오가 그리워하는 대상에 대해서 미도리마는 알지 못했기 때문에 무심결에 나온 말이었음. 자신에게 찾아와 이야기를 할 때의 타카오는, 특정 대상에게 연심을 품은 것 같아 보이지 않았음. 물론 호감을 품고 있는 대상 또한 없어 보였음. 한없이 가벼워 보였던 타카오에게도 이런 마음을 가지게 하는 존재가 있었구나. 이토록 가슴이 미어질 것 같은 감정을 품게 되는 대상이 있었구나. 그 상대는 분명 같은 인간이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미도리마는, 무의식중에 가슴 부근 옷자락을 손으로 움켜쥐었음. 가슴 속이 답답해져오는 기분이었음.


타카오의 나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미도리마가 보는 타카오는 열 너댓 살 정도 되어보였음. 미도리마는 중얼거리듯이 이야기를 했음. [그 정도 나이라면 누군가를 은애할 수도 있을 법한 나이지.] 하고. 머리로는 납득을 할 수 있었지만, 감정은 그걸 쉬이 받아들이지 못했음. 이 또한 아무래도 자신이 타카오라는 인물을 받아들인 탓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미도리마는 한숨을 내뱉었음. 장성한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의 감정이 이런 것인가. 아니면 친우를 떠나보내는 이의 감정이 이런 것인가. 미도리마는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돌탑에서 떨어져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음. 그렇게 무의식중에 향한 곳은 멀리 있는 곳도 아닌, 자신이 칩거하기 전 타카오와 접촉했던 그 바위였음. [...타카오]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되뇌면서, 미도리마는 다시금 한숨을 내쉬고는 그 바위에 걸터 앉았음. 그리고 그의 손과 자신의 손이 겹쳐졌던 그 위치에, 조심스럽게 다시 자신의 손을 얹었음. 눈이 소복히 쌓여 있었으니 냉기가 느껴질 법도 하지만, 자신에게 있어서는 이전에 그가 남기고 간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음. 신에게 온기나 한기 같은 물리적인 요소는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제하고서라도.


[타카오] [타카오] [타카오] 손끝으로 그의 온기를 찾아 헤매이듯이 움직이면서 연거푸 그의 이름을 불러댔음. 하지만 다른 존재에게는, 인간에게는 미도리마의 목소리가 닿지 않았음. 그 사실이 이다지도 슬픈 것이었다는 걸 미도리마는 깨닫게 되었음.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도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그 현실은, 미도리마를 더할 나위 없이 슬프게 했음. 미도리마가 신체에서 나온 이래로 흐린 하늘만 펼쳐져 있었을 뿐이었음. 그러나 곧 미도리마의 감정 변화에 반응하기라도 하듯, 하늘은 눈을 떨어뜨리기 시작했음. 차가운 눈송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신을 위로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가볍게, 포근하게 에워싸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솜같은 가벼운 눈송이들이 하늘하늘 내려와 바닥에 안착했음. 미도리마가 앉은 바위 위에도, 미도리마의 신체가 모셔진 사당 위에도, 그리고 이전에 내린 눈으로 흰 융단이 펼쳐진 것 같이 변해버린 땅 위에도. 미도리마는 그렇게 내리는 눈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음. 내리는 눈송이의 형태가 사람의 인영으로도 보이기도 하고, 내리는 눈송이의 기척이 사람의 기척으로 느껴지기도 했음. [가관이구나, 미도리마.] 미도리마는 자조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음.  


그렇게 눈 내리는 풍경을 감상하듯이 응시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사당을 향해 걸어오는 인영이 시야에 들어왔음. 하지만 미도리마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음. 그러나 그 인영에 시선을 두려 하지 않았음. 타카오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이 칩거해 있는 동안 타카오는 돌탑을 쌓으면서 마음 속의 연인을 향한 그리움을 키우고 있었을 터였음. 그렇게 신실한 마음으로 기원을 했는데, 소원을 이루어줄 신이 없는 상태였으니 소원이 이루어질 리가 없고, 그 사실에 분명 실망하고 떠났을 거였음. 아니면 신의 힘을 빌리려 하지 않고, 본인의 힘으로 연정을 쟁취하러 떠났을 거였음. 타카오라는 인간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으니까.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니 미도리마는 아직 다른 '인간'들을 보고 싶지 않아졌음. 하지만 타카오의 기척이 남아 있는 이 장소에서 떠나지 않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라, 그저 고개를 돌리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음.  '인간'은 눈을 밟으며 사당쪽으로 걸어왔음. 그리고 사당 앞에 무언가를 내려놓곤 무릎을 꿇고 앉는 듯 했음. 그런 기척이, 그런 소리가 미도리마에게 전해졌음. "...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이름 모를 신 님." 보지 않으려 했던 '인간'에게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미도리마가 그렇게도 듣고 싶어하던 목소리와 닮아 있었음. 아니, 완전히 일치했음.


듣고 싶었던 그 목소리에, 미도리마는 아직 다른 인간을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도 있고 시선을 사당쪽으로 돌리고 말았음. 내리는 눈송이에 모습이 살짝 살짝 가리긴 했지만, 틀림 없는 그였음. 평소의 가벼운 태도는 어디로 갔는지,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앉아 합장을 하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음. 장난기 어린 것처럼 보이는 눈동자는, 살짝 내려 감긴 눈꺼풀 안에 감춰져 있었음. 
-만나고 싶어요.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지만.
-그저 '여기 있다'는 사실 밖에는 모르지만.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요.
-다시 한 번, 여기 있다는 걸 느끼고 싶어요.
사당 앞에서 기도를 올리는 것은, 신에게 닿는 유일한 방법. 신의 눈이 인간을 지켜보고, 신의 귀가 소리를 듣고 있고, 신의 입술이 열려있다면, 신은 간절히 비는 소원을 듣고 그에 응하는 답을 내려줄 터. 칩거 상태의 미도리마는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입을 다물고 있는 상태여서 몰랐지만, 지금은 달랐음. 지금의 미도리마에게는, 타카오가 비는 소원이 하나도 빠짐 없이 전달되고 있었음. 만나고 싶다는 감정. 이름 모를 대상을 향한 그리움. 그 모든 것이.


미도리마가 그리워하던 그가 저곳에 있었음. 바위에 남은 희미한 온기의 기척이 아니라, 더욱 따뜻한 체온을 가진 실체가 저곳에 있었음. 미도리마는 금방이라도 타카오에게 달려가 그를 감싸 안고 싶었음. 그 감정은 가련한 피조물을 위로하는 신의 마음이 아니었음. 잘 표현은 할 수 없지만, 그건 아마도 연심에 가까운 것이라 생각했음. 누가 본다면 이 세상에서 제일 신분 차이가 날지도 모른다고 말할 수도 있는 그런 감정이었음. 하지만 미도리마는 바위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음. 그 와중에도 타카오의 기도는 계속 미도리마에게로 흘러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사랑이 아닐지도 몰라요.
-하지만 사랑일 수도 있어요.
-남들이 알면 미쳤다고 이야기 하겠지만...
-신 님, 제발 한 번 만이라도...
-아니면, 이 마음을 멈추게 해주세요.
"... 지워주세요."
마지막 기원은 울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토해내졌음. 하지만 타카오는 울지 않았음. 마지막 말을 꺼낸 다음, 눈꺼풀을 들어 올리더니 사당을 물끄러미 응시했음.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옷에 묻은 눈을 가볍게 털어내고는, 돌아가려는 듯이 몸을 돌렸음. 떠나는 건가. 그런 소원만을 남기고 떠나는 건가. 미도리마는 그제서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음. 떠나는 그를 이대로는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음. 달리 무언가를 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미도리마의 목소리는 인간에게 닿지 않았음. 그리고 미도리마가 인간과 접촉한다고 해도, 인간이 그걸 눈치 챌 거란 법도 없었음. 어떻게 하면 타카오를 돌려 세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타카오가 이쪽을 보게 만들 수 있을까. 미도리마는 그 짧은 시간에 무수히 많은 생각을 했음. 그리고 한 가지를 떠올렸음. 미도리마는 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음. 그리고 그간 타카오가 공들여서 세운 돌탑을, 신의 힘을 사용해서 무너뜨렸음. 와르르, 하고 탑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음. 돌들이 데구르르 굴러가는 소리도 들렸음. 자신에게 등을 보이고 걸어가고 있던 타카오에게도 돌탑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는지 다시금 이쪽을 돌아보았음. 정확히는 사당 쪽을 바라본 것이겠지만, 미도리마는 그가 이쪽을 다시 본 것만으로도 좋았음. 그가 공들여 쌓았던 탑을 무너뜨리는 것은 분명 해서는 안 되는 행동에 가까웠지만, 미도리마는 한편으론 속 시원한 기분이 들기도 했음. 그의 지고지순한 기다림을 무너뜨려서,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으니까. 그래, 이건 질투일지도 몰랐다. 타카오가 기다리고 있는 상대에 대한 깊은 질투심. 타카오는 약간 떨어진 곳에서 탑이 무너진 것을 바라보고 있었음. 그러다가 살짝 시선을 들어 올리는가 싶더니 두 눈을 크게 떴음. "......어?" 미도리마는 타카오의 시선이 바로 자신에게 꽂혔다고 느꼈음. 그럴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