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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립 전력 60분, 키워드 : 기다려줄래(요)?
고등학교 때부터 해온 자율연습은 거의 내재화 된 습관과도 같아서,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나면 간단한 트레이닝을 하거나 근처 공원을 달리곤 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하아, 하아.”
달리던 발이 집 근처에 도착할 즈음에야 서서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속도를 더욱 줄여 걷는 수준이 되었을 즈음에는 어느덧 집 현관문 앞이었다.
“땀범벅이네.”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고는, 한 손으로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훔쳐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운동을 하는 것은 자신에게 있어서 일상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땀으로 흥건한 트레이닝복이라던가, 주변 공기가 온 몸에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 듯한 감각은 익숙해질 법 함에도 불구하고 익숙해지지 않았다.
찝찝하다.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바로 입 밖으로 내뱉고는 미간을 살짝 좁혔다. 그리고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을 때 신발을 벗고 안에 들어서면서, 상체 실루엣을 드러낼 것만 같이 들러붙어 있는 상의를 다소 거칠게 벗어 던졌다. 그리곤 달리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바로 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나머지 옷을 벗어버린 뒤, 러닝을 하느라 뜨겁게 달아올라 있는 몸을 쿨다운 시킬 겸 체온보다는 아주 조금 낮은 온도의 미지근한 물로 땀으로 흠뻑 젖어있는 몸을 한 번 씻어 내렸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땀에 푹 젖어있는 머리카락을 샴푸로 말끔하게 감은 후에, 욕실 한 쪽 벽에 걸려 있던 샤워 타올을 집어 들어 바디 워시로 거품을 낸 뒤 몸을 꼼꼼히 닦았다.
처음 몸에 끼얹었던 물보다 조금 더 차가운 온도의 물로 거품마저 싹 씻어 내리고 나자, 한껏 뜨거워져 있던 몸이 조금은 진정을 한듯 평소의 상태를 되찾은 것 같았다. 샤워 후 찾아드는 상쾌함에, 욕실에 들어오기 전 불쾌함이 가득한 얼굴과는 달리, 마치 콧노래라도 흥얼거릴 것만 같은 얼굴을 한 채로 잘 마른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아냈다. 그리고 젖은 머리카락을 대강 수건으로 감싼 채 밖으로 나와 얼른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야 살 것 같네.”
집에서 입는 편한 옷을 챙겨 입은 후에야 비로소, 어딘가 한숨이 어린 것 같은 목소리로 살 것 같다는 말을 토해냈다. 그리곤 반쯤 버릇처럼 핸드폰을 찾아서 누구에게 연락이 온 것은 없는지 확인을 했다. 아쉽게도 자신에게 연락을 한 사람들은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이들 뿐이었다. 오늘도 깨어진 기대감에 살짝 울상인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냉큼 메시지 창을 켜곤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운동하고 왔더니 체력이 제로가 되어 버렸슴다. 아~ 힘들다. 선배는 뭐하고 있슴까?]
원체 답장을 바로 보내는 사람도 아니고, 문자를 일일이 찍고 있는 시간이 아깝고 또한 귀찮다며 연락은 되도록 전화로 하는 사람이었기에 지금 보낸 자신의 문자에 바로 답이 돌아올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일이라도 하며 느긋이 그의 연락을 기다리자고 생각하며, 핸드폰을 챙겨든 채 침대 위로 올라가 편히 누웠다.
*
그러다 어느 순간 시야가 바뀐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라?”
분명 자신의 방에, 그것도 침대 위에 누워 있을 터였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곳은 늘 보던 자신의 방 전경이 아니라, 익숙하다면 익숙한 카이조의 로커 룸이었다.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정말 질릴 정도로 본 풍경이었기에 착각을 하려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지금 자신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자, 시야가 살짝 왜곡되는 것 같더니 로커 룸 한 쪽에 어느 인물의 인영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흐릿하더니 서서히, 마치 ‘진짜 사람’처럼 선명해지기 시작한 그 인영은 어느새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상이 또렷해졌다.
“...카사마츠 선배?”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꿈속에 나타난 인물은, 자신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하는 그 사람이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레귤러 유니폼을 입고 있는 상태로 로커 룸의 간이 의자에 걸터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는, 자신이 가까이 다가갔을 즈음에야 인기척을 느꼈는지 서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올린 그와 시선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자신은 순간적으로 당황하고 말았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그의 눈에서 ‘너는 누구냐’라고 묻는 것 같은 기색을 읽어낸 탓이었고, 두 번째는 그의 얼굴이 자신이 맨 처음 그를 만났을 때보다 더욱 앳된 탓이었다. ‘지금의 그’도 제 나이로 보이지 않을 만큼 앳된 얼굴이었지만, 꿈속의 그는 그것보다 더욱 어려 보였다.
“카사마츠 선배... 맞죠?”
“... 날 선배라고 부르는 걸 보면 넌 1학년이겠군.”
“네?”
자신을 1학년이라고 단정 짓듯 이야기를 하는 꿈속의 그의 목소리에 조금은 당혹스러움이 묻어나는 어조로 반문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자신의 말에 반응할 기력도 없다는 듯이,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당혹스러운 와중에도, 그의 한숨에서 깊은 고뇌와도 같은 무언가를 느껴서 고개를 조금 숙여 그에게로 얼굴을 가까이 했다.
“무슨 일 있슴까?”
“알고 있을 텐데? 아니면 아픈 구석을 찔러 죄책감을 이 이상으로 안겨주고 싶은 건가?”
“영문을 모르겠는데요.”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대답을 한 자신을 올려다보면서, 그는 미심쩍은 표정을 잠시 지어보였다. 그리곤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다시 한 번 낮은 한숨을 토해내더니 혼잣말을 내뱉는 것처럼 천천히 읊조리는 것 같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모를 정도로 눈치가 없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의 시합을 생각하고 있으면 절로 위축되는 기분이 되곤 해.”
“그 때의 시합?”
“... 내 미스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이없게 탈락하는 일은 없었겠지. 아니, 우승을 노려볼 수도 있었겠지.”
그 정도로 강한 팀이었는데, 하고 그가 쓴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그가 이전에 들려주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가 2학년이었을 때 그의 실수로 인해서 우승을 노려볼 수 있는 팀이었는데도 불구하고 1회전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셨다고 하는 그 이야기가.
자신은 그때 그의 이야기를 전해 듣곤, 여느 때보다 승리에 대한 염원을 가슴에 품었었다. 비록 자신이 참전했을 때의 시합 결과는 그의 아픔을 배가시킬 뿐이었지만, 그래도 그의 긍지는 드높기 짝이 없다고 그 때 새삼 다시 생각했었다. 하지만 죄책감을 홀로 끌어안고 있는 시기의 그를 마주하게 되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당시의 그’와 ‘자신이 만났던 시기의 그’는 다른 건 아닐까, 하고.
“그래서 ‘구원받고’ 싶은 겁니까?”
“뭐?”
“과거를 속죄하고 싶단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겁니까?”
그에게 질문을 던지는 자신의 목소리가 점점 싸늘해져가는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도 그걸 느꼈는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눈싸움을 하는 것처럼, 얼마간 눈 한 번 깜빡거리지 않은 채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싸움 아닌 싸움의 종지부를 찍은 것은 그로, 그는 자신에게서 시선을 떼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떴다.
설마 포기한 것인가. 왠지 모르게 불안해지는 마음에, 노려보는 것처럼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안감과는 달리, 그의 눈은 여느 때보다 결연한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결심을 굳힌 것 같은 그런, 굳건함을 엿볼 수 있는 그런 눈빛이었다.
“과거를 속죄하려 하진 않겠어. 또한 누군가의 구원을 바라지도 않겠어.”
“......”
“내 스스로의 의지로... 다음에는 꼭 이기겠어.”
그의 마지막 말에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그’와 같은 말을 했다. 잠깐 위축되었다고는 해도, 비록 자신이 꾸는 꿈속의 인물일지라도, 그는 변함없이 올곧고 강한 그였다.
“내가 왜 후배에게 이런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본인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는지, 헛웃음에 가까운 숨을 잠시 토해내더니 그가 중얼거리듯 덧붙였다. 그런 그를 잠시 지켜보고 있다가, 그의 앞에 살짝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양 손으로 그의 한 손을 감싸 쥐고는, 마치 기도를 올리는 것처럼 그 손을 자신의 이마에 가볍게 댔다.
“물론 시합에서 매번 이길 수는 없슴다.”
“......”
“시합에서 지고 난 후 자신을 질책하게 되는, 이번 같은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슴다.”
“......”
“그렇지만 전, 당신에게 받은 게 많으니까 그 보답을 하려고 함다.”
“...보답?”
아무런 대답 없이 듣고만 있던 그가,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 물음에, 살짝 입 꼬리를 끌어올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에게 우승컵을 안겨 주겠슴다. 카이조가 하나로 뭉쳐 얻어낸 결과물을.”
“......”
“그러니까, 기다려줄래요?”
그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일말의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내려앉았을 즈음, 그의 입술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무슨 말을 자신에게 건네고 있었다. 자신이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인 것 같았으나, 서서히 꿈에서 깨어나고 있는 탓인지 몰라도 그의 목소리는 자신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
“...아.”
눈을 뜨자 카이조의 로커 룸이 아닌, 익숙한 자신의 방 천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카사마츠 선배...”
그에게 문자를 보내고 잠든 탓에, 그와 관련된 꿈을 꾸게 된 거라고 생각을 하면서 베개맡을 손으로 더듬어 핸드폰을 찾았다. 손끝에 걸린 핸드폰을 집어 들어 혹시 답장이 오지는 않았나, 하고 확인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그가 보낸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꿈의 연장선상인지는 몰라도, 괜히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며 그가 보낸 문자를 확인했다.
[미안. 한숨 자고 있었어. 근데 꿈에 네가 나왔더라.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문자를 읽고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그와 자신이 같은 꿈을 꾼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 우연이 과연 그와 자신 사이에 존재할지 여부는 잠시 미루어두고, 한껏 웃고 있다가 느긋한 손놀림으로 그에게 답 문자를 보냈다.
[저도 방금 전까지 선배가 나오는 꿈꾸고 있었는데! 그 꿈을 꿨더니 선배가 더 보고 싶어졌슴다!]
‘그러니까, 기다려줄래요?’
‘기다릴게. 카이조의 우승을. 네가 안겨주는 우승컵을. 내가 졸업한 후라도 좋으니까, 언제까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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