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빠져나간 그라운드는 조용하기 짝이 없었다.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아주 조금 외로움과도 닮은 감정을 느끼곤 했다. 실제론 혼자 있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외로워졌다. 자신만이 홀로, 그 텅 빈 그라운드 위에 서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자신을 주시하는 이 하나 없는 마운드 위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것 같아서.
그 기분은, 마운드 위에서 홀로 분전하고 있는 고독감과도 닮아 있었다.
*
째깍째깍.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균일하게 울려 퍼졌다. 평소라면 주변 소음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을 그 소리가, 적나라하다 싶을 정도로 크게 들렸다.
언제 끝나는 거지.
나루미야는 창 너머로 보이는 텅 빈 그라운드를 응시하면서,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미 다른 부원들은 제각기 훈련을 마치고 기숙사나 집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나루미야 본인도 원래대로라면 훈련이 일찍 끝났다는 사실에 기뻐하면서 기숙사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을 터였다. 어디까지나 원래대로라면.
이게 벌써 몇 시간째야.
무심코 투덜거리는 어조로 말을 내뱉고 말았다. 자각 없이 흘린 말이었기에 말을 꺼낸 본인이 놀라버렸다. 그리고 이 목소리가 혹시 들렸을까, 괜히 찔끔한 표정을 지으면서 힐끔 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한 소년이 있었다. 나루미야와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는, 그러나 아직은 앳된 것 같은 얼굴을 한 소년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앳되어 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그 얼굴에 떠올라 있는 표정만큼은 어른스럽다고 생각될 정도로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타다노 이츠키. 누가 들으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름이라 오히려 기억에 잘 남는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평범의 극치에 달하는 이름. 그 이름을 가진 소년은 나루미야와 배터리를 꾸리고 있었다. 나루미야는 마운드 위에 서서 팀을 이끄는 에이스 투수. 타다노는 그런 에이스의 공을 받으면서 홈을 지키는 포수. 그라운드 위에서의 두 사람의 관계는 그렇게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라운드 밖에서의 둘은 조금 달랐다.
“이츠키.”
나루미야는 다시 창밖의 그라운드를 내다보면서,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왜 불러요?”
오랫동안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던 탓인지는 몰라도, 평소보다 한 톤 가라앉은 목소리가 나루미야의 부름에 화답했다.
대답을 해주었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자신을 방치해둔 것에 화를 내야 하는 것인지. 나루미야는 절로 새어나올 뻔한 한숨을 가까스로 삼키면서, 다시 한 번 입술을 열었다.
“그거, 언제 끝나?”
벌써 두 시간도 넘게 기다렸다고, 하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자 그제야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타다노가 스코어북에서 시선을 떼곤 벽에 걸린 시계 쪽을 바라보았다. 나루미야는 다시금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시간을 확인한 순간 그의 얼굴 위로 얼핏 낭패감과도 같은 것이 스치고 지나갔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나루미야의 예리한 눈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언제 보아도 두껍다, 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 스코어북. 타다노는 그걸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풀이하며 읽고 있었다. 스코어를 확인하고 당시 시합 흐름을 복기하는 것이 포수의 역할이라면 역할일 터였다. 그 점은 아무리 투구와 배팅 외에는 신경 쓰고 싶지 않은 나루미야라 할지라도 제대로 숙지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은 변함없지만.
나루미야는 입술을 살짝 삐죽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다며, 주섬주섬 스코어북을 챙기기 시작하는 타다노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메이 선배?”
“굳이 그렇게 부르지 않아도, 내가 누군지는 내가 더 잘 알거든?”
“아뇨, 그런 의미로 부른 게 아닌데요.”
타다노가 자신을 부른 이유는, 나루미야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간 자신이, 아무런 말도 없이 그를 끌어안았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포옹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꽁꽁 옭아매는 것 같은 이 행동 때문이었다.
“자세도 좀 불편하고, 숨 쉬기도 어째 좀 버거운데요.”
“자업자득이니까 조금만 참아봐.”
“자업자득이라니요….”
그런 억지가 어디 있어요, 라고 그가 이어 말하려는 찰나 나루미야는 그에게로 고개를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리고 그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자신의 입술을 그의 입술 위에 가볍게 포갰다.
역시 입을 다물게 하는 건 이게 제일 효과적이라니까.
기습적인 입맞춤으로 인해 딱딱하게 굳어버린 타다노를 좀 더 강하게 끌어안으면서, 그는 입술을 맞대고 있는 상태로 슬쩍 양 입 꼬리를 위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마음이 내키는 만큼 입술을 잔뜩 부비고 있다가, 어느 정도 충족이 되었다 싶을 즈음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입술을 떼어냈다.
“이…이게 무슨…!”
“뭐 어때. 보는 사람들도 없는걸.”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여긴 신성한 그라운드….”
“정확히 말하자면 그라운드는 아니지. 그라운드 옆 덕아웃. 정확히 말하자면 덕아웃에 딸린 방?”
그런 걸 묻자고 이야기 한 게 아니란 거 잘 알잖아요! 하고 그가 외쳤다. 하지만 노르스름한 석양빛과는 달리 조금 더 붉게 물든 뺨과 귓불을 보게 되어, 나루미야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괜찮아, 괜찮아. 그라운드에 있는 야구의 신도 용납해주실 거야.”
것도 그럴게, 우리, 배터리이기 이전에 연인이잖아? 하고 덧붙이며, 나루미야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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